얼마 전 추운 어느 날이었다. 아직 방학 중이었지만 마음은 새 학기 준비에 바빴고, 그렇게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악기점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새 학기에 단지 오르간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만으로 그 악기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색한 모습으로 이리저리 구경하고 있는데, 한 직원이 다가와 친절하게도 도와주겠다는 것이다. 얼떨결에 나온 말이 『사장님 계십니까?』하고 물었다. 사장님을 전혀 알지 못하거니와 그분을 만날 계획조차 없는데…. 아는 것이라고는 멀리서 바라보았던 그분의 인상 정도였다.
잠시 후 말쑥한 분이 다가와서 명함을 내밀었는데, 내가 기억하는 사장님의 인상과는 다소 차이가 있어 보였다. 그래서 받아든 명함에 써 있는 「대표이사」를 잘못 이해하여 「사장대리」 정도로 생각하고 말았다. 그런데 사장도 아닌 그분(?!!)이 나를 사장실로 안내를 하고 게다가 차까지 대접하면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었다. 왠지 당황스러웠던 나는 내 소개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단지 오르간에 관심이 있다는 정도의 수준으로 계속 횡설수설하기만 하였고, 대표이사께서는 정체도 모르는 손님을 인내심으로 대해주시는 것이었다.
그런 어수선한 상황에 나타난 그분의 아들을 소개받았는데, 글쎄 명함에 「부사장」이라고 쓰여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내가 저지르고 있는 실수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 궁여지책으로 「대표이사님」에서 「사장님」으로 호칭을 바꾸었다. 나에 관한 소개도 서둘러 하고, 늘어나는 학생수로 인하여 학교에서 오르간을 더 구입할 예정이라고 앞으로의 계획도 말씀드렸다. 간신히 회복된 「정상적인 관계」에서 몇 가지 안내를 더 받은 후,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악기점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다음날 악기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사장님께서 근사한 오르간을 기증하시겠다는 것이다. 내가 보여준 것은 어리석음 밖에 없는데…. 지금 학생들은 행복하게 그 오르간으로 공부하고 있다. 이 행복한 마음을 모두 모아 다시금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