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의 반생명적인 행로를 더 이상 좌시해서는 안된다. 생명수호를 기치로 하고 있는 가톨릭교회는 반생명적인 정책을 수립, 추진하는 국가 권력과 질병 치료 및 국가 경쟁력 강화라는 미명 하에 상업주의적인 연구를 일삼는 일부 생명과학자들을 저지하기 위한 범교회적인 노력에 나서야 한다.
생명윤리의 붕괴 조짐은 심각하다. 생명과학의 발달로 인해 나타난 인간 배아 복제 문제와 관련해 특히 그러하다. 유일한 관련법인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발효됐으나, 이미 이 법은 반생명적인 악법으로 지목돼 있다. 핵심적인 사안인 인간 배아 복제 실험을 허용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더 이상 정부와 생명과학계의 반생명적 행위에 대해서 비난할 생각은 없다. 이미 교회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결정적으로 훼손하는 배아 복제 실험에 대해서 충분히 비판하고, 그 비윤리성을 지적해왔기 때문이다,
대신에 우리는 과연 한국 천주교회가 생명수호라는 본래적 사명을 얼마나 충실하게 수행하기 위해서 노력했으며, 헌신적으로 투신했었는가 하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한국교회는 적어도 생명과학의 발달로 야기된 새로운 윤리 문제에 대한 대처에 있어서 미온적인, 적어도 비효율적인 대응을 해왔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교회의 입장에서 인간 배아 복제 실험은, 낙태나 살인에 준하는 행위이다. 교회가 이 문제를 심각하지 않다고 여기지는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배아 복제 실험은 필연적으로 수정란의 파괴로 이어지며, 이는 낙태에 준하는 생명 파괴의 행위이며 살인이다. 혹시라도 교회가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면 이는 참으로 심각한 문제이다.
그러면, 이제 교회는 배아 복제 실험이 국법에 의해 인정되고, 배아에 대한 관리 감독 시스템 조차 부재한 상태에서, 법적 정당성까지 부여받은 생명과학자들의 배아 실험을 그대로 두고 보아야 할 것인가?
인간 존재를 실험대상으로 삼는 최악의 반생명적 행위를 하는 과학자가 노벨상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사회 풍토를 한국 교회는 그대로 보고만 있어야 할 것인가? 그것은 교회가 자기의 시대적인 소명과 요청을 외면하는 행위이다.
우리 사회에서 생명윤리에 관한 한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은 별로 없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생명의 존엄성을 수호할 최소한의 바탕이라도 마련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내 가정, 생명 유관 기관과 단체들,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 전문가들, 나아가 주교회의 차원의 공식적이고도 전폭적인 생명수호 노력이 시작돼야 한다. 범교회적인 생명운동이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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