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주(斷酒)는 자신의 확고한 의지와 기도로 극복해나가야
서울 중림동성당 뒤편, 가톨릭출판사 앞 빌딩에 서울대교구 단중독사목위원회가 있다. 단중독(斷中毒)이란 단어가 낯설지만 단주(斷酒)나 단절 등의 단어를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어떤 종류의 중독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이 위원회는 원래 알코올사목위원회로 출발했다. 우리나라에 거의 200만명이나 넘는 것으로 추산되는 알코올 중독자들을 치료하는 목적이었다. 그러다가 술만이 아니라 알게 모르게 빠지게 된 도박, 마약 등 반사회적 습관들을 고치기 위한 목적으로 이름까지 단중독사목으로 바꾸었다.
나는 이곳을 6개월간 다녔다. 2003년 6월부터 거의 연말까지다. 초급반 2달, 중급반 2달을 다니고 어느 정도 회복됐다고 판단해 그 다음에는 가끔 이 사무실에 들러 후기교육에 참여해보곤 했다. 벌써 1년 반전의 일이다. 그러나 지금 다시 알코올병에 걸렸다. 흔히 알코올 중독자하면 서울역 앞 지하도에 있는 노숙자를 떠올린다. 맞다. 희망이 적은 노숙자들이 쉽게 알코올 중독이 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알코올 중독자가 꼭 노숙자가 되지는 않는다. 나같이 직장과 가정을 꾸려나가지만, 자주 술에 접하고 이를 즐기다 도를 지나쳐 가족과 남에게 실수를 하는 횟수가 잦은 사람들은 광의의 알코올중독자다.
나도 처음에는 서울주보에 난 허근 신부님의 글을 읽고 호기심에 나가보았다. 술이 자제가 안 되고 자주 소위 「필름이 끊어지는」(블랙 아웃) 현상을 경험하면서 혹시 알코올 중독 초기현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 나가보았다. 나간 처음에는 알코올 중독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술을 끊으려고 온 것이 아니라 자제력을 기르려고 온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자기변명은 2~3일만에 깨졌다. 이미 나는 알코올 중독 초기가 아닌 중기로 넘어온 상태며 조금 더 심해지면 병원에 입원을 하든지 약물치료를 요하는 상태라는 판정이었다.
그 판정은 이러하다. 첫째 혼자 술을 마시는가 여부다. 둘째는 술을 마신 다음날 심하게 후회하는 경우가 있느냐이다. 세번째는 가족이나 친지로부터 진지하게 술을 끊을 것을 요구받은 적이 있느냐가 판단기준이다. 이 기준에 거의 해당됐다. 더욱이 내가 술을 마시고 실수한 것, 특히 남이나 가족에게 피해를 준 경우를 기록해보았더니 지난 30여년간 거의 50건이 넘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의 실수만 해도 20여건이나 됐다. 남의 집 상가에서까지 소리를 지르고 객기를 부렸으니. 술 마시면 맘이 헤퍼지고 모습이 추해졌다. 한자에 추할 추(醜)자가 『귀신이 술을 먹은 모습』이라더니 술이 깨지 않은 상태로 거울을 보면 내가 봐도 영락없이 귀신이 취한 몰골이었다.
이러니 어찌 내가 알코올 중독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알코올 중독자라는 사실을 인정하자마자 단주를 요구했다. 한잔이라도 마시면 신부님과 같은 반의 여러분에게 고백해야한다. 6개월간은 단주를 지켰다. 술 안 마시는 이유를 대기가 힘들어 몇 달간 저녁에는 아예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자꾸 사람이 변했다고 하기에 몸이 안 좋아져 그렇다고 하니 만나는 사람마다 건강 안부부터 물어 이것도 곤혹스러웠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밤 모임에 나가면서 나를 시험해 보았다. 전혀 안될 것 같던 단주가 가능했다. 술 안먹는 이유로 당뇨 핑계를 댔다. 실제 술이 심해지면서 혈당량이 200 가까운 내당상태이기도 했다. 그러나 막무가내 『소주는 괜찮다』며 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 의지가 강하니까 결국 주위에서도 인정해 주었다. 처음에는 친구나 친지들에게 알코올 중독자라고 선언하기가 불가능할 것 같던 단주습관도 이렇게 의지와 주위의 도움으로 자신감을 갖게 됐다.
그러나 이 자신감과 헤픈 마음이 문제였다. 6개월쯤 지나고 2004년 새해가 밝으면서 한잔씩 입에 대기 시작했다. 연말연시의 건배 제의 정도였다. 입에 붙였다 뗄 정도로부터 시작했는데 한두 잔씩 늘기 시작했다. 가장 술을 참기 어려운 때가 문상 때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다 상가에서까지 건강을 내세우면서 술 한잔을 거절하는 것이 너무 야박해 보여서다.
그래도 6개월 절제훈련을 했으니 그전과는 다르겠지. 결국 결심이 반년만에 도로아미타불이 돼버렸다. 술만 먹으면 예전 버릇이 되살아난다. 실수를 하고 나서 집안에서, 그리고 주위에 몇 번씩 끊겠다고 공언하곤 1주일이 못돼 그 버릇이 나온다. 이젠 공신력도 떨어졌고 내 자신에 겁이 난다. 술자리는 여전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당시 함께 다녔던 신부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이건 우리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닐 거예요. 하느님의 도움 없이는 술을 끊기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기도와 은총뿐인 것 같아요』 요즘 다시 단중독센터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것도 버릇이 될까 봐 망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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