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 극복하고 온 인류를 품에 안은 예수님 본받아야
「멀리 있는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더 낫다」
혈연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우리풍속임에도 불구하고 혈연보다 더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은 지금 내 옆, 앞, 뒷집에서 살고 있는 이웃사람이라는, 오랜 경험에서 나온 깨달음이다. 우리에게 이웃의 존재란 행복과 불행을 함께 하는 삶의 공동체 였다. 나지막한 흙담너머 쉴새 없이 오가던 미운정 고운정이 그랬고 저녁상에 별미라도 올리는 날이면 어린 손자의 등을 떼밀어 이웃집의 몫으로 우선 챙기는 정겨운 풍경이 그랬다. 때로는 이웃과 냉전을 치루기도 하지만 집안의 경조사, 모심기, 추수같은 농번기를 치루면서 서로의 긴장은 눈 녹듯이 사라진다. 이사를 하면 일일이 이웃을 찾아 정성 곁들인 떡과 함께 첫인사를 하는 신고식(?)은 이웃을 향한 예의이자 겸손이며 서로 섬기며 살고자 하는 우리의 고유한 통과의례이다!
토요일 이른 새벽 명동성당 뜰은 기념 사진을 찍기 위해 건너편 호텔에서 쏟아져 나온 일본인 관광객으로 분주해진다. 「욘사마」 「김치」 「겨울연가」에 힘입어 주말의 명동은 일본사람, 일본말로 새벽을 연다. 새벽미사후 성당뜰을 나서면 「독도망언」 「역사왜곡」 「친일 조영남」을 성토하는 현수막, 독도지키기 서명운동으로 좁은 명동길이 더 좁다.
개인을 떠나 한국인으로서 우리의 이웃이라면 단연 일본이다. 비록 「가깝고도 먼」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니지만 이웃이다. 무엇보다 「특별한」 이웃이다. 한반도라는 한국의 특수한 지정학적 조건과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의 역사를 특별히 일본으로부터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말 명동거리를 활보하는 한류 열풍의 일본인들과 이들을 질타하는 목 멘 한국인의 성토앞에서 목에 걸린 가시의 경험이 떠오르는 이유는 삼킬수도 뱉아낼 수도 없는 불편한 존재로서 아직 일본은 가깝고도 먼, 특별하지만 불편한 이웃이기 때문이다.
겐지씨는 48세의 일본의 오오사카에 살고 있는 개신교 목사다. 동경대학에서 철학을,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한 지식인이자 신앙인이다. 그와 내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공처가(?)인 겐지목사와 20년을 동고동락해온 그의 자랑스런 아내 한국인 조미숙씨 때문이다.
그가 항상 「자랑스런」이라고 고백하며 안주머니속에 간직하고 다니는 그의 가족사진엔 두 명의 자녀, 그리고 오른쪽 팔이 없는 그의 아내 조미숙씨가 행복하게 웃고 있다. 그러나 지금 겐지씨 곁의 그녀의 과거는 동경 뒷골목의 매춘부였다. 장대비가 퍼붓던 자정을 훨씬 넘긴 밤, 뒷골목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그녀를 28살의 젊은 목사 겐지씨가 발견했다. 겐지씨는 그녀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5년전 한국에서 일본으로 밀항해온 후 술집 종업원을 거쳐 매춘생활로 망가져 있는 조미숙씨는 자살을 시도, 달리는 기차에 몸을 던졌다. 팔 하나를 잃고 노숙인이 되어 있었다.
한국인 여성 노숙자 장애인인 30살의 조 미숙씨를 살리기 위하여 겐지씨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그녀를 통하여 일본에 살고 있는 한국인 특히 노숙인들의 현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3년후, 겐지씨는 미숙씨를 아내로 맞이했다. 지금 겐지목사는 노숙인들의, 특히 한국인 노숙인들의 귀국과 삶의 회복을 돕고 있다.
내게 일본은 겐지씨다. 독도와 교과서로 민족과 국가의 정체성을 찾자는 실체없는 일본이 아니다. 자국의 찬란했던 역사와 작은 땅 덩어리를 핑계로 요즘 유행하는 표현대로라면 이웃을 열받게(?) 만들어 집안싸움 일으키고 급기야 너희가 「나쁜 이웃」임을 증명해보이려는 국가, 민족이라는 이기에 중독된 익명의 군중이 아니라 48살의, 나와 함께 삶을 나누고 있는 구체적인 인격의 한 일본인이다.
겐지씨에게 있어 한국은 아내 미숙씨를 포함하여 일본에서 그와 함께 살고 있는 한국인 노숙인 아무개 아무개씨 들이다.
우리는 한국과 일본, 한국인과 일본인이라는 먼 거리를 가난한 노숙인안에서 좁혔다. 먼 이웃에서 가까운 이웃으로 가는 길을 찾았다. 한국과 일본의 갈등과 충돌이 겐지씨와 나 사이에서 또 한번 우리를 위협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친구이다.
이천년전, 유다사람 예수가 유다를 극복하고 가난한 사람편에 섰다. 그가 드디어 사랑을 완성하고 그 길을 열었다. 그것이 그리스도신앙의 표지이자 구원의 길인 십자가이다. 일본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가깝다. 그 길이 먼 이유는 수평으로만 가고 있는 우리의 좁고 어두운 삶 때문이다. 수평으로 치닫는 길에서 내려와 수직으로 하강하려는 의지를 다질때 유다를 극복하고 온 인류를 품에 안은 예수의 성공안에서 일본인 겐지씨지가, 한국인인 내가 한국으로, 일본으로 서로에게 가는 길이 열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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