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 교황에 이어 지상의 평화위해 강대국 잘 견제해야
전 세계 12억 가톨릭신자들의 수장이자 하느님의 지상대리인인 교황이 새로 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첫영성체를 할 때만 해도 라틴어 미사로 바오로 6세의 은총을 빌다가 67년께부터 성찬 전례 때 「우리 교황 바오로와 우리 주교 스테파노(김수환 추기경)」등 우리말로 바뀌었다.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만 외우는 의식이지만 이때가 미사 중 조용히 손을 모으고 정신을 집중하는 때라 귀에 익은 구절이다. 78년 바오로 6세 교황에 이어 요한 바오로 1세가 한달만에 돌아가셔 요한 바오로 2세가 승계했으니 내 생애 50여년간 네번째 교황을 맞은 셈이다. 이번 교황 선거를 두고 매스컴과 교회 내에서도 여러 이야기들이 오갔다. 우선 김추기경이 연로하셔서 교황 선거권이 없다는 점에 아쉬워했다. 여기에 일본은 가톨릭신자가 얼마 되지 않는데도 추기경이 2명이나 되고 우리는 후임 추기경을 임명해주지 않아 국제정치적인 고려가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불만도 나왔다.
한국가톨릭이 스스로 커온 역사적인 영광이 있고 순교 성인만 해도 103위나 되는 신앙의 텃밭인데 교황청이 너무 홀대하는 게 아닌가라는 불만이다. 김추기경도 『내가 너무 오래 살아 한국교회가 그토록 원하는 젊은 추기경이 나오는데 방해가 된다』며 자조 섞인 푸념을 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그러나 가만히 보면 이번에 한국 천주교회가 크게 홀대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연장자순이긴 했지만 영광스러운 교황 즉위미사를 집전한 3명의 추기경 중에 김추기경이 계셨다. 교황 축하자리에 전 세계 평신도 대표로 한국인 신자 부부와 어린이가 참석했다는 것도 우리 교회 평신도의 위치를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사도 베드로 이후 2000여년간 264분의 교황이 계셨으니 평균 재임기간은 7~8년에 지나지 않는다. 알다시피 5세기 후반 로마제국이 망하고 나서 교황권도 약해지다가 8, 9세기부터 다시 강해져 중세엔 세속의 왕권을 좌지우지하던 시기가 600년 이상 오래 지속됐다.
16세기 이후 근대 절대왕권이 세지면서 1800년대 초 나폴레옹 황제 때는 황제대관식에 참가하지 않으면 직위가 보장이 되지 않을 정도의 수모도 받았다. 또 1885년 이탈리아 통일군에 의해 바티칸이 점령당하고 모든 영지를 빼앗겨 세속적인 재산과 힘을 잃었다. 이후 전 세계 가톨릭의 정신적 본부로, 그리고 교황을 영적인 수장으로 삼는 가톨릭 신자들의 기도와 힘으로 교황권은 더욱 그 중요도가 높아져온 게 사실이다. 바오로 6세는 1, 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피폐해진 이 세계에 끊임없이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교회가 세속의 영역으로 스스로 내려오는 결단을 1, 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보여 주었다.
이후 미사전례도 라틴어만이 아닌 각 나라말로 할 수 있게 됐고 미사 때 부르던 성가도 각 나라에서 작곡, 작사한 현지성가가 불리게 됐다. 이렇게 되니 엄숙 장엄하던 미사와 각종 전례가 간소화되고 지루하게만 느껴지던 것이 많이 해소됐다.
폴란드 출신의 요한 바오로 2세는 400여년 만에 처음으로 비이탈리아 출신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됐다. 게다가 가톨릭과는 정신적으로 전면전을 벌여왔던 공산주의 국가 출신이 교황이 됐으니 소련권에 대한 바티칸의 정책이 어떻게 바뀔지가 궁금했다. 결국 교황의 기도와 노력으로 재위 때 동구권은 몰락했고 이곳이 다시 자유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에 더해 갈라진 형제들인 프로테스탄트는 물론 그리스정교회, 러시아정교회 나아가 이슬람교 불교계까지 발을 뻗쳐 종교간 대화도 활발히 전개됐다. 한국 천주교회는 물론 지난 석탄일인 주일 미사 중 신부님이 이를 축하하는 기도도 하는 것을 들으며 에큐메니컬 운동을 넘어 종교간 대화도 점차 늘어갈 것으로 생각됐다.
나치를 겪은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전쟁의 참상과 평화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사회주의가 몰락한 뒤 이제 세계평화는 전쟁 없는 상태만으로는 안된다. 미국 단일패권에 의한 폐해가 심각해지고 있다.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면서 전 세계의 부익부빈익빈 현상을 부추기더니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침공으로 인명살상까지 자행하고 있다. 교황청이 그처럼 반대하던 이라크 침공을 강행해 매일 폭탄테러와 테러소탕전이 진행되고 있다. 고문과 살인이 다반사다. 로마제국의 오현제시대인 「빡스 로마나(로마의 평화)」는 100년간 이민족에 의해 제국의 변방이 무너지고 있었다.
「빡스 아메리카나(미국에 의한 평화)」는 10여년밖에 안됐는데 벌써 불안하다. 여러 가지 안좋은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새 교황이 나서야 한다. 바오로 6세, 요한 바오로 2세에 이어 지상의 평화를 위한 역할은 미국을 잘 견제하는 일일 것이다. 이를 위해 신자들은 미사와 기도 중 성령께 새 교황에게 영적인 은총과 지혜를 주시도록 간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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