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도 지하철에서 우연히 옛 제자를 만나곤 한다. 반가워도 대화를 할 수 있는 시간은 한쪽이 내릴 때 까지의 몇 분 동안이다. 몇 마디를 나누다 헤어질 때 제자들의 인사는 한결 같다.
『나중에 한번 찾아 뵐게요』
하지만 정말로 「나중에 한번 찾아뵙는」 제자는 거의 없다. 인간관계가 많아질수록 「선생」의 존재는 후순위로 밀리나보다.
얼마 전 전동차에서 고등학교 때 담임이셨던 선생님을 뵈었다. 나를 알아 보실까, 반가워 하실까 등의 소심한 생각으로 머뭇거리다 선생님의 빈 옆 자리에 조심스레 앉으며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은 이내 나를 알아 보시며 얼굴이 환해지셨다.
『너, 그림 잘 그리던 석이로구나』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반 학생들을 기억하시는 선생님. 졸업생들의 앨범을 가끔씩 펴보시는 게 큰 낙이라는 선생님의 기억력은 오직 제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있는 듯 그저 놀랍기만 했다.
내가 먼저 내려야겠다며 『나중에 한번 찾아 뵙겠습니다』라고 무심히 인사를 드리자 선생님께서는 잠시 머뭇하시더니 자신도 이번 역에 볼 일이 있다며 함께 내리셨다.
승강장과 개찰구를 지나 출구까지 걷는 동안 선생님과 즐거운 추억을 더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지상으로 오르는 계단 앞에 이르자 선생님은 출구가 달라 반대편으로 가셔야겠다며 발길을 돌리셨다.
선생님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뜻밖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반대편 출구로 가시겠다던 선생님께서 아까 그 개찰구 안으로 다시 들어가시는 게 아닌가. 나는 선생님이 다시 만날 기약이 없는 제자와 잠시라도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마치 이번 역에 볼 일이 있는 것처럼 일부러 개찰구 밖으로 나와 출구까지 함께 걸어오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의 마음은 그렇게 크고 넉넉한데 왜 제자의 마음은 그렇지 못할까. 「나중에 한번 찾아 뵙겠다」는 막연하고 상투적인 나의 인사가 부끄럽고 민망했다.
『선생님, 꼭 찾아 뵐게요. 부디 건강하세요』
김석(라파엘.화가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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