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치료 명목 “생명 짓밟는 행위”
“생명 살린다는 이유로 생명 죽이는 꼴”
난자채취때 호르몬제 투여… 암 위험도
생명윤리법 심의 없이 연구 의구심마저
작년에 이어 또 다시 우리나라 연구진이 체세포 핵이식을 통해 복제된 인간배아로부터 배아줄기세포를 획득하는데 성공하였다. 특히 이번 연구는 환자의 체세포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난치병을 치료할 날이 가까이 다가왔다고 기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연구와 관련해서는 아직까지도 해소되지 않은 윤리문제가 있다. 그리하여 많은 나라에서는 이 연구를 제한하고 있으며, 허용하는 경우에도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연구가 갖는 윤리적 문제점은 무엇인가?
첫째, 이 연구의 가장 결정적인 문제점은 배아 상태의 인간생명을 해친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수정과 동시에 새로운 인간생명으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수정직후부터 우리는 수정란, 배아, 태아 등으로 불리는 연속적인 발생과정을 거쳐 신생아로 태어난다.
그리고 이 신생아는 점점 더 자라면서 어린이, 청소년, 청장년으로 삶을 이어간다. 그러므로 배아는 우리 인간의 초기생명이며, 이 초기생명이 파괴되면 그 이후의 인간생명은 존재할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배아가 아직 인간생명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과학적 주장이라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배아 안에 이미 그 인간의 모든 생물학적 정보가 들어있으며, 그 생물학적 정보에 의해 배아는 자신의 발생과정을 연속적으로 진행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배아는 분명히 인간생명이다.
그런데 배아줄기세포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발생과정을 밟고 있는 배아를 파괴할 수밖에 없다. 이는 곧 배아상태의 인간생명을 죽이는 것이다. 난치병 치료를 위한 연구도 중요하지만, 그 연구과정에서 초기의 인간생명을 해친다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생명윤리원칙 중 「악행금지의 원칙」이 있다. 의학 및 생명과학은 그 대상이 되는 생명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는 것이다. 생리학의 기초를 닦은 베르나르도 일찍이 『과학의 발전이나 다른 사람의 복지에 아무리 유용하더라도 누군가에게 해를 입힌다면 그 실험을 해서는 안 된다』고 천명한 바 있다.
또 다른 생명윤리원칙 중 「전체성의 원칙」이 있다. 어떤 한 생명에 대한 의학 및 생명과학의 개입은 그 개입 당하는 생명 전체에 이로울 때만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배아줄기세포를 획득하는 과정에서 배아는 아무런 혜택도 얻지 못하며 오히려 그 생명이 파괴되는 해악을 입는다. 그러므로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이러한 생명윤리 원칙에 위배된다.
둘째, 이 연구의 또 다른 문제점은 이 연구를 위해서는 많은 수의 난자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작년의 연구에서는 16명의 여성으로부터 242개의 난자를, 이번 연구에서는 18명의 여성으로부터 185개의 난자를 기증받아 연구에 사용하였다.
물론 난자기증절차가 충분한 정보를 제공한 상태에서 자발적 동의를 거쳐 금전적 보상 없이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과연 난자채취과정이 여성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는가에 대해 검토할 필요가 있다.
난자채취과정에서 여성은 호르몬제를 10일 이상 매일 투여 받는다. 매일 주사를 맞는 것도 불편한 일이지만, 호르몬제는 몇 가지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한다. 단순히 난소가 커지는 것 외에 복강이나 흉강에 물이 차기도 하고, 호흡곤란, 심지어 간부전, 난소암까지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난포의 성숙도를 확인하기 위해 여러 차례 질식 초음파 검사를 하는데, 이 역시 질속에 이물질을 삽입하는 것으로 여성에게 불편감을 줄 수 있다. 또한 난자를 채취할 때 질에서 난소로 침을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감염이 발생하여 골반염으로 이어질 경우 불임이 될 수도 있다.
이와 같이 난자채취과정은 여성에게 여러 가지 불편함을 주며, 발생빈도는 매우 낮지만 합병증을 일으켜 심각한 상태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과연 이러한 위험이 있는 난자제공을 여성에게 요청할 수 있을까? 더욱이 이번 연구에서는 30세 이상 여성의 난자에 비해 30세 미만 여성의 난자에서 더 많은 줄기세포가 배양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연구를 위해서는 젊은 여성의 난자가 많이 필요할 것인데, 이에 따른 문제는 과연 없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끝으로 과연 이번 연구가 국내법안에서 이루어졌는가에 대해 물음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연구진이 밝힌 바에 따르면, 이번 연구는 작년 10월부터 이루어졌다. 그런데 작년 10월은 아직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발효되기 전이다. 이 법은 작년 1월 공포되었지만, 발효는 올 1월 1일부터이다.
특히 이번 연구에 사용된 체세포 핵이식 복제 연구에 관해서는 올 4월에야 구성된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서 그 연구 범위와 종류 및 대상을 심의한 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이번 연구는 이 법률의 통제를 받았다고 할 수 없다. 누구보다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을 연구진이 이 법과 무관하게 연구를 수행한 점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의학 및 생명과학의 목적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은 연구 및 치료 과정에서도 준수되어야 한다. 그러나 배아줄기세포연구는 지금 난치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연구한다고 하면서, 그 과정에서 배아 상태의 인간생명을 해치는 문제점이 있다.
이는 분명히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이다. 선한 목적의 실현은 선한 방법과 과정을 통해 실현되어야 한다. 연구의 성공에 대한 열광과 기대가 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가 지니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하고 숙고할 때 비로소 의학 및 생명과학의 인간화가 가능하리라 생각한다.
홍석영 <가톨릭대학교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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