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관심과 사랑 베풀어야
요즘은 특별하다는 뜻으로 「특」이라는 말을 빈번하게 사용한다. 「보통」이 얼마나 믿을 수 없는 선으로 전락했으면 이토록 「특」에 집착할까
음식은 특식, 강의는 특강, 자리는 특석, 병원에서는 특진…. 특별한 대접을 받고자 하는 특별한 사람들의 소원이 「특」에 들어있다.「특이 아니면 보통에도 못 미치는 푸대접일 거라는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요셉의원에서 평소 모든 환자에게 공평하게 대접하지 못하고 「특」을 베풀 때가 있다. 친절한 인사와 더불어 우선 순위로 진료를 하고 질병에 대한 설명과 위로까지 덤(?)으로 줄 때다. 이런 특별대우는 주로 성직자, 수도자들의 몫이 된다. 요셉의원의 특성상 교회와 밀접하기 때문이고 이분들의 옷차림이 다른 환자들과 쉽게 구별되기 때문이다.
8월의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오후였다. 옷차림이 남루한 노인 한 분이 요셉의원의 계단을 올라 왔다. 훌쩍 큰 키에 야윈 몸의 노인의 어깨에는 닳을 대로 닳은 가죽가방이 걸쳐져 있고 얼굴은 땀과 더위에 지쳐 창백했다. 요셉의원의 어떤 환자보다도 초라한 환자였다. 접수 창구 앞에서 잠시 머뭇거리며 낡은 가죽가방을 뒤적이며 어눌하고 분명치 않은 발음으로 이야기하는 노인을 앞에 두고 나는 재빨리, 거의 반사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지금 가장 현명한 처신은 몇 푼의 돈을 집어주고 보내는 것이라고 재빨리 결정했다.
『신부님, 오셨군요』 어디선가 직원의 인사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주머니를 열심히 뒤지던 손을 멈추었고 그날 푸른눈의 외국인 신부님과 나 사이에 일어날 뻔했던 「특별한」사건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특별한 대접을 하고 싶은 분은 예수님일 것이다. 샤를 드 푸코 신부는 우리는 할 수 없다고 한다. 마치 내가 요셉의원에서 초라한 행색의 노인에게 베풀어야 했을 특별한 대접에 실패했듯이 동전 몇 닢으로 내쫓을 것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삶이 너무 평범하고 우리의 눈에 띌 만한 아무런 실마리조차 없기 때문이다. 결국 그 분은 사람들 속에 드러나지 않고 숨어계시는 분이고 우리는 그 분을 찾는 술래가 된다. 다행히 어리석은 술래인 내게 사하라 사막의 숨은생활, 캘거타의 가난한 사람들 속에 숨어 계신 예수님을 보여준 시대의 예언자이자 신앙의 천재는 푸코 신부와 마더 데레사이다.
세상 한가운데서 새로운 변화를 겪고 있는 신앙인들에게 이 두 분이 가르쳐준 예수님은 가난하고 평범하고 소박한 사람들안에 사시는 예수님이다. 예수님을 찾는 유일한 방법은 가장 가난한 이웃들 삶속에 들어 이 사람들 사이로 숨어드는 것이라 한다.
예수님을 알아보는데 비범하고 탁월한 신앙의 안목을 갖춘 이 분들의 시력 앞에서 예수님을 찾기는 「기적」이지 않을 수 없다. 어디를 둘러봐도 경제논리만이 유일한 생존방식인 듯 돈 한푼 낼 수 없는 가난한 환자가 발 붙일만한 데는 없다. 쫓기고 쫓겨서 흘러 들어오는 자선병원이야말로 가장 가난한 환자들이 모이는 어쩌면 환자 중의 환자, 꽃에 비유하면 「꽃봉우리」 같은 환자들이다. 이들을 기꺼이 환자로 선택한다는 것은 세상의 논리에 역행하는 어리석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가난한 사람들을 선택해온 소수의 어리석은 사람들 속에서 일어난 기적은 예수님이 어디에 사시는지를 증명한다.
우리에게 기적이란 가난과 절망으로 망가진 노숙인 행려자에게서, 더럽고 냄새나고 게으르다는 이들에게서 예수님을 보는 일이다. 의사에게는 꽃봉우리같은 환자요, 그리스도교 신앙인에게는 예수님같이 특별한 환자가 되는 사건, 이것이 기적이다.
오늘 우리에게 「가난」과 「평범」은 「특」에서 제외되는 불리한 선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을 향해서 몸부림치는 세상 한가운데에 푸코 신부의 나자렛 목수 예수님이 계셨고 캘거타의 소외된 가난한 사람들 속에 마더 데레사의 예수님이, 그리고 지금 영등포 쪽방동네의 노숙환자들 속에 요셉의원이 살고 있다. 잃어버린 「특」을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에게 돌려주기 위해서이다.
나 역시 의사로서 매일 매일 요셉의원의 환자들 속에서 예수님을 찾는 숨바꼭질 중이다. 푸코 신부와 마더 데레사가 보았던 그 예수님을 이곳에서 찾는다. 그 분을 찾을 때까지 예수님은 내게서 항상 푸대접을 받고 계실 것이다. 그리고 요셉의원의 진정한 수혜자들, 아무도 환영해 주지 않아 영등포 쪽방골목까지 밀려온 이 환자들 역시 소홀한 대접을 받을 것이다.
지난 8월, 신부님과 나 사이에 불발로 끝난 「특별한 」사건은 두고두고 「특」이 누구에게 돌아가야 할 몫인지, 내가 얼마나 우둔한 술래인지를 절감케 하는 기회였다.
아직 신앙의 눈을 뜨기에는 두이레 강아지만도 못한 나에게 예수님은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게 꼭꼭 숨어계신」 그런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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