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죽음을 묵상”
-고(故)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생가 방문
본사 주최 동유럽 성지순례에 참가한 류철희 회장의 순례기를 4번에 걸쳐 연재한다. 한때 기자로 명성을 날렸던 류회장의 글에는 순례에서 느낀 신앙적 열정과 주님께 대한 사랑이 가득 담겨져 있다. 류회장은 서울신문 사회부 부장, 천안시장, 충남 부지사, 서울 논현동 본당 총회장 등으로 교회와 사회에서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그날 폴란드의 작은 시골 작은 마을 바도비체에는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리 순례단에게는 낯선 이름 바도비체-그러나 지난 4월 선종하신 교황 요한바오로 2세가 태어난 고장이라서 그런지 단원들은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아늑함과 설레임과 엇갈리는 기분을 맛 보았다.
1시간 넘게 기다려 들어간 교황님의 생가는 전형적인 폴란드식 2층 집이었다. 그 집은 성당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다. 언제부터 기념관처럼 꾸며진지는 모르겠으나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교황님의 발자취를 증언하는 기록과 사진중에는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사진도 걸려 있어서 반가움을 더했다.
『죽음이 언제 올지 모르지만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그 순간을 성모마리아께 맡겨 드린다…모든 이들은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사제에게 자신을 드러낼 준비를 해야한다』
교황님의 유품들을 보면서 문득 머릿속을 스쳐가는 영성의 말씀들이 우리 단원들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사실 교황님께 대한 추모 열기는 폴란드 어디를 가도 아직 식지 않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체스트코바 성당도 교황님이 방문했던 곳. 그 성당에는 검은 성모상이 모셔진 걸로 유명하다. 숙소가 성당 맞은 편에 있어서 새벽 6시 미사에 참례할 수 있었다. 정각이 되자 우렁찬 팡파레와 함께 성모님을 가리웠던 사진틀이 벗겨지고 10명의 사제가 공동으로 집전하는 미사가 시작되었다. 새벽인데도 성당은 거의 찼다. 놀라운 것은 청소년과 가족단위 참례자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시절에도 90% 이상 가톨릭신자들이 신앙을 지킬 수 있었던 원동력이 이같은 열기에서 우러나온 것이라고 짐작되었다. 그뒤에 교황님이 계셨으니….
체스트코바 성당은 폴란드를 지켜주는 성지로 사랑받고 있었다. 연간 순례객이 200만명. 「야스나코라」(빛나는 언덕)라는 언덕에 자리 잡은 성당에 이르면 입구에서 성당까지 200m를 넘는 비스듬한 길을 무릎으로 기어서 간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5월 5일 아침 아우슈비츠를 방문하려던 계획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전세계 유다인들이 「마르제 비치」(살아있는 자의 행진)라는 행사를 위해 1만8000여명이 한꺼번에 이 지역에 몰려와 수용소 방문을 통제했기 때문이다. 꼴베 신부님이 수용됐던 방을 보고 싶었던 꿈을 접고 돌아서며 신부님과 이곳에서 희생된 영혼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유럽에서 가장 넓은 광장을 가진 크라코프로 가는 길은 차가 많이 밀리고 있었다. 비는 계속 내리고…. 크라코프는 요한바오로 2세가 보좌주교로, 교구장으로 교황에 선출될 때까지 사목하던 곳. 그 유명한 마리아 성당과 600~800년의 역사를 가진 주변의 건물들이 전쟁을 겪으면서도 손실되지 않아, 유네스코가 이 도시를 첫 번째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한 때 폴란드 수도였던 크라코프는 그 긴 역사만큼 많은 유적과 자랑거리를 안고 있었다. 특히 소금광산은 동유럽 관광의 필수코스로 불리는 곳이지만, 정작 우리의 눈길을 끈 것은 지하 135m에 만들어진 소금 성당. 광산의 수호성인인 킹카(구네군다) 성녀를 모신 이 성당에는 3명의 광부가 63년여에 걸쳐 소금으로 만들었다는 「가나의 기적」과 「최후 만찬」, 「예수님의 일생」 등의 빼어난 예술성을 지닌 조각품들이 곳곳에 있었다.
류철희 〈전 서울 논현동 본당 총회장〉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