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영 신부 (가톨릭신문사 주간.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
『황우석 교수는 줄기세포 스타』, 『황우석 교수, 드디어 난치병 환자의 배아줄기세포 배양 성공』, 『국보급 과학자 황우석 교수는 노벨상 영순위』, 『「황우석 지원 특별법」 국회차원에서 본격 논의』, 『식약청, 「황우석 프로젝트」 지원팀 구성 검토』
『황우석 교수의 기술로 인간복제로 이어질 가능성 높아졌다』, 『황우석 교수의 연구는 생명경시』, 『인간의 생명윤리를 위반한 것이기 때문에 범죄(crime)』
참으로 불안하다. 정말이지 찹찹하다. 과연 과학이 인간생명을 정복해도 되는건가?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인간생명을 수단으로 사용해도 되는가? 도대체 과학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해도 되는 것이 과학의 신념인가? 필자는 세 가지 관점에서 이번 황우석 교수의 연구결과에 대해서 우려와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첫째, 이번 연구 결과로 곧 바로 인간 복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한 층 높아졌다. 복제배아를 여성의 자궁에 착상시키기만 하면 바로 복제인간이 된다. 따라서 복제배아와 복제인간을 따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복제배아가 곧 복제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인간 복제를 시도하려는 과학자들이 여러 가지 기술적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제는 그 어려움이 해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한마디로 황우석 교수의 연구 결과는 인간 복제를 가능케 할 수 있는 기술을 제공할 수 있다.
둘째, 어떤 목적에서든 결국 생명인 인간배아를 파괴하는 행위이다. 황우석 교수는 인터뷰에서 모든 윤리적 문제를 극복하였다고 하였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치료목적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배아라 할지라도 그것은 분명 인간생명이다. 따라서 인간생명인 배아를 파괴시키는 행위는 결코 용인될 수 없다. 지금도 생명과학자들 간에 인간 생명의 시작점에 대해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현재는 많은 생명과학자들이 수정된 지 14일 후에라야 인간생명이라고 주장하지만, 수정된 때부터 인간생명이 시작된다고 주장하는 생명과학자들도 있다. 물론 숫자적으로는 열세이지만 몇 년 뒤에 수정된 때부터 인간생명이라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밝혀진다면 그때 가서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인간배아를 그저 세포라고 간주하여 실험하고 조작하고 복제했던 생명과학자들과 그들을 전적으로 후원해 주었던 정부는 그 책임을 어떻게 질것인가?
셋째, 난자 채취 적법성의 윤리적 문제이다. 황우석 교수는 지난해 연구 때는 16명의 여성으로부터 242개의 난자를 제공받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번 연구에서는 18명의 여성으로부터 185개의 난자를 제공받아 실험했다고 밝혔다. 그가 이렇게 밝힌 것은 난자 제공 여성들의 「자발적 기증의사」에 따라 난자를 채취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인위적인 난자 채취 과정에서의 고통은 직접 그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잘 모른다. 그저 아무런 고통이나 부작용 없이 쉽게 얻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렇게 쉽고도 간편하게 얻어지는 것이라면 왜 기증동의서까지 쓰겠는가? 여성으로부터의 난자 채취가 아무런 윤리적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왜 세계 언론에서 여성의 존엄성을 무시한 행위라고 비난했겠는가? 분명 거기에는 윤리적 문제가 있다. 그것도 작은 문제가 아니라 심각한 문제가 발생된다.
황우석 박사는 이번 난자 제공 여성들의 「자발적 기증의사」 동의서에 분명히 부작용을 언급하면서 모두 설명을 했다고 했다. 그러나 난자 채취시에는 그저 단순한 합병증만 일어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합병증뿐만 아니라 불임이나 심지어는 사망에까지도 이를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난자 제공 동의서에는 이러한 내용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단지 기증서에는 기증자가 합병증 가능성에 대해 숙지했다는 문구만 들어 있을 뿐이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여성이 배란 증진을 위해 호르몬 주사를 맞으면 감정적 스트레스와 정맥응고, 불임, 뇌졸중 등의 부작용에 시달릴 수 있으며 심하면 사망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아울러 난자에 대한 기증 동의서를 전문적인 의료기관이 아닌 서울대수의대 생물공학연구팀에서 받은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어떻든 여성의 난소로부터 호르몬 주사를 투입해 인위적으로 난자를 채취한다는 것 자체가 여성의 인격을 침해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발적이든 자발적이지 않던 이는 분명 여성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행위임에 틀림없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진리를 선포하기 위해 존재한다(요한 18, 37). 따라서 교회는 언제든지 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돼 있다.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무지로 인해 「예」라고 해도 그것이 거짓이거나 혹은 진리를 가장한 위선이라면 교회는 언제나 「아니오」라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대다수의 많은 생명과학자들이 『배아는 그저 세포 덩어리일 뿐이다』라고 아무리 우겨도 교회는 언제나 『인간배아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생명입니다』라고 선포한다.
무엇인가가 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해서, 그것이 언제나 도덕적, 혹은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기술의 진보가 반드시 더 좋은 것만은 아닐 수 있고, 오히려 윤리의 퇴보일 수 있다. 결국 윤리를 상실한 과학은 죽음과 파멸을 초래케 할 뿐이다. 또한 오늘날 생명과학의 발달은 가치전도의 현상마저도 보이고 있다. 즉 이제 과학은 개인의 부와 명예 추구뿐 아니라 동시에 인간생명을 담보로 상업적 이윤 추구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현실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목적이어야 할 인간이 수단이 되고 수단이어야 할 이윤이 궁극적 목적이 되는 것처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이 수단화되었을 때 파생되는 개인적, 사회적 문제의 심각성은 매우 크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이러한 인간 가치에 대한 몰이해는 인간의 자기 파괴를 이끄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나아가서는 전 세계가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그래서 인간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아 하루빨리 생명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올 해부터 시행되고 있는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생명의 소중함을 가장 중요시하는 올바른 법으로 개정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한 8,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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