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관 신부(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남북이 서로 미움·불신의 벽 허물고
북한 형제들에게 주님 사랑 전하자”
열렬한 환호 지켜 보며 한 동포임을 실감
동질성 회복하고 서로의 다양성 인정해야
북한 평양 방문은 여섯번째지만 서울-평양 직항로로 한 시간도 안 걸려 평양에 도착하니 감회가 깊었다. 처음 북한을 방문할 때는 긴장감이 감돌고 만나는 사람들도 경직된 모습이었고 동행한 북한 안내원들의 고압적인 말과 행동으로 많은 심적 부담을 갖고 지정한 지역을 방문하였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나 북한을 방문하면서 많은 변화를 실감했다. 식량과 생필품을 지원받으면서도 우월감을 갖고 대하던 모습과는 달리 공조 공생을 역설하며 경제적 어려움을 솔직하게 밝히면서 우리 민족끼로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고 하였다.
지난날에는 비교적 잘사는 지역 협동농장을 소개하고 자랑하면서 협동농장의 능률 향상을 위해 경운기를 비롯한 농기구와 비료를 요청하였었다. 그런데 이번 행사동안 저녁 만찬에 동석했던 얼굴이 검게 그을린 북한 사람은 농번기 모심기에 동원돼 한달 식량을 갖고 시골에 가서 일하고 왔다고 솔직하게 말하였다. 남한사회가 잘사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부러워하는 모습이었다. 북한 사람들의 표정은 한층 밝아 보이고 남한사람들에게 손을 흔드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 동포 한 핏줄임을 실감하였다.
이번 6.15공동선언 5주년 행사를 북측에서는 「민족통일대축전」으로 크게 부각시키면서 우리 민족이 본의 아니게 외세에 의해 분열되었으니 힘을 합쳐서 통일을 이루자고 호소하였다. 연설 때마다 온 민족이 단결하여 우리민족끼리 3대 공조, 즉 민족자주공조, 반전평화공조, 통일애국공조를 실현하여 외세에 의한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실현하자고 강조하였다. 특별히 이번 평양 방문동안 우리 민족끼리 자주, 자력으로 힘을 합쳐 통일을 이루자는 말을 비롯하여 공조 공생하자는 말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천리마동상 앞에서부터 김일성 경기장까지 행진하는 동안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부는데도 길옆에 늘어서 『우리는 하나, 조국통일』을 목청이 터져라 외치며 열렬한 환호를 보내는 평양시민들의 모습은 종전 모습과는 많아 달라 보였다. 북측의 달라진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남한의 모습도 변화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도상의 38선을 없애기 전에 마음의 38선을 먼저 지워야 한다』는 김구 선생의 글귀가 새롭게 다가왔다.
한 핏줄 한 동포이면서도 이념과 사상, 그리고 체제가 다르다고 다른 나라 사람처럼 생각하였던 고정 관념과 선입견으로 얼마나 높은 벽을 쌓고 살아왔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북한의 사람들도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능력을 발휘하고 싶고, 평안하고 행복하고 아름답게 살고 싶은 심정은 우리와 같다. 오랜 세월 분단의 아픔을 안고 이질감을 갖기보다는 서로 하나임을 인정하고 동질감을 갖고 친근하게 지내야 한다. 동질성을 회복하여 진정한 형제관계를 이루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수용해야한다. 이런 가운데 북한이 굶주림과 빈곤으로 겪고 있는 아픔을 서로 힘을 합쳐 치유해야 한다.
이제는 남북이 서로 불신과 미움의 벽을 헐고 서로 만나 대화를 나누어야 하겠다. 북한의 경직된 체제와 주체사상은 하느님의 가르침을 외면하고 있으나 『일곱번뿐 아니라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하여라』(마태 18, 22)하시며 원수까지도 사랑하라하신 주님의 사랑으로 북한 지도자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고, 굶주리고 헐벗은 백성들에게 진정한 사랑의 손길을 행동으로 보여 주어야 하겠다. 우리가 외면하고 냉담하고 미움과 불신의 벽을 쌓고 있으면서 상대방에게 먼저 벽을 허물라고 강요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해(루가 10, 25) 불목하는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바라신다. 주님께서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던 그 사랑으로 북한의 이웃형제들에게 사랑을 실천한다면 아무리 강고한 분단의 벽도 허물고 화해하고 통일을 실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통일의 길은 멀리 있지 않고 우리 안에 있고 우리 안에 머무시는 주님의 사랑 안에 있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면 주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시고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한 형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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