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자연 지키고 가꾸어야
어쩌다 고국을 떠나 살게된 내 기구한 팔자가 어언 40년이 되었다. 지난 몇해는 이른 은퇴를 한 덕에 일년에 4, 5개월 정도를 고국에서 살고 있지만 떠나 살았던 세월이 너무 길어서인지 고국의 생활은 아직도 어색하기만 하다.
작년 이맘때 쯤이었다. 고국에 오자마자 매스컴에서 떠들어 대던 「실미도」라는 영화를 보려 했지만 오랜 상영기간이 바로 그때에 끝이 났고 재개봉 영화관은 찾을 수 없었다.
며칠후 이런 아쉬움을 한 후배 시인에게 말했더니 이 시인이 영화 「실미도」를 못보았으면 진짜 실미도에 가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제안해주었고 그 실미도는 서울서 그리 멀지 않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영화가 하도 인기가 있어서 영화의 촬영지였던 실미도가 이제는 관광지가 되어간다는 후배 시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어느날 아침 그의 차로 실미도로 향했다.
인천 근처의 무의도라는 곳에 차를 세우고 썰물이 빠진 틈을 타 긴 징검다리 같은 곳을 걸어서 작은 무인도인 실미도에 들어섰다. 섬에 들어서자 마자 여기저기 팻말이 박혀 있는데 그 팻말 마디에는 영화 「실미도」의 장면 사진이 있었다.
상당히 조잡한 팻말의 작은 사진을 훑어보면서 섬을 걸어 다니던 나는 점점 기분이 뭉그러 지기 시작했다.
아담하고 아주 조그만 섬의 여기저기에는 영화를 찍을 때 썼음직한 긴 철근 파이프가 어지럽게 널려 있고, 굵은 로프가 구렁이 처럼 썩어가는가 하면 적당히 부셔놓은 나무 판자들이 곳곳에 마구 흩어져 있고, 여러 곳에 엄청 많은 음료수 캔이나 소주병들의 쓰레기가 어지럽게 온 섬을 덮고 있었다.
입구의 다른 쪽, 아마도 영화 장면의 주무대였을 해변가 아름다운 모래밭과 잘생긴 바위들 사이로 영화를 위해 만들어 썼던 모래 푸대가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많이는 해변가 모래 푸대가 사방에 흩어져 있었다. 많이는 해변가 모래속에 반쯤 뭍혀 있었고 또 많이는 모래가 터져나와 푸대 자루가 바닷물에 너덜거리고 있었다.
아름다워야할 작은 해변가와 바위들은 전쟁이 지나간 폐허같이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도대체 이게 웬일인가. 영화를 다 찍은지 1년도 훨씬 넘었을텐데 도대체 아직도 이게 웬일인가.
그 좋은 영화를 찍은 회사가 영화 제작후 나 몰라라 하고 그 많은 장비와 쓸데없어진 부대 시설 치우기를 잊거나 무시해 버린 것일까. 아니면 혹 인천시 문화관광부 같은 곳에서 관광에 쓰겠다며 자재나 소주병을 방치해 달라고 한 것일까?
누구의 탓이든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이렇게 쓰레기 더미 자리로 만들어 버릴 권리가 있을 것인가. 내게는 작은 섬이 냄새와 누더기와 쓰레기로 부끄러워 울고 있는 것 같은 착각까지 들게했다.
실망이 되어 함께 갔던 젊은 시인과 섬을 황망히 떠나면서 실미도가 영화 한편 때문에 완전히 아름다움을 잃어버린 실미도(失美島)가 되었네 하며 탄식을 했지만 누구에겐가 솟구치는 분노같은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
이런 자연 풍광의 훼손은 그 나라 그 도시 그 동네에 대한 범죄 행위가 아닐지 모르겠다. 외국에 오래 산 나같은 사람에게만 그런 것이 보이는 것은 아니겠지.
고국의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나는 자주 이런 광경을 목격하였고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자연 훼손과 환경에 무신경한 것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놀이터에 가면 쓰레기 더미의 냄새가 진동하기 일쑤고 아름다워야 할 냇가나 강가에는 비닐 봉지나 과자통이 둥둥 떠다니기 일쑤다. 거기다가 미관 때문인지 시내고 유원지고 절터에는 쓰레기통이 귀해서 버리고 싶은 쓰레기를 마땅히 버릴 곳도 마땅치가 않다.
너와 내가 자연 환경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사회의 질서이고 공중 도덕이고 하느님이 주신 자연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하루 빨리 오염 냄새 때문에 코를 틀어 막고 훼손된 자연 환경이 안쓰러워 눈둘 곳을 찾기 어려운 시기가 끝나주기를 두 손 모아 바랄 뿐이다. 그리고 이런 내 희망은 곧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이 있어서 사실 조금은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기도 한다.
얼마전까지 자동차 매연 때문에 고생하던 일을 이제는 더이상 찾아볼 수도 없고 화학 물질의 오염 때문에 개천이나 강가에서는 거품이 일고 검고 푸른 색깔로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던 때도 확실히 지났다.
거기다가 그렇게 더럽던 공중 화장실이 이제는 생화가 싱그럽게 자랄 정도로 세계 어느나라와 비교해도 부끄럽지 않게 깨끗해졌다. 이런 나라에서 자연 훼손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를 왜 아니 금방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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