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게 연극계에 종사하고 있다. 아주 긴 세월은 아니지만 그래도 짧지 않은 세월동안 연극을 한다는 것은 산 넘어 산의 연속이었다.
지금은 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연극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저 밑바닥 일 때 연극을 하고자 했고, 딸이 교사가 되길 원했던 부모님의 반대는 무척 심했다. 그러던 중에 연극영화학과를 다니며 교직과목을 이수하면 국어교사 자격증을 받을 수 있다는 정보는 부모님을 설득시키기에 충분하였다.
연출가가 되기 위해 결국 연극영화학과에 들어갔다. 학교를 병행하며 기성극단의 원로 스승님의 조연출로서 정진하여 4년 후에 연출가가 되었고 국어교사 자격증도 받아 두었다. 「받아 두었다」는 것은 「국어교사를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연극을 하겠다」는 것을 당당하게 말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기대했던 딸의 배신(?)으로 실망하셨을 부모님을 생각하면 마음 한 구석 죄책감이 떠나질 않았다.
그렇게 14년이 지난 뒤 연극을 계속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돌아갈 수도 없는 위기가 닥쳤을 때(87년) 오히려 연극의 본고장 뉴욕으로 스스로를 추방하였다. 자료수집 중에 교육연극(educational theatre)을 알게 되었고 우리나라 교육현실을 생각할 때 앞으로 꼭 필요한 분야라고 판단하여 NYU대학원과 영국의 교육극단(GYPT)에서 공부하고 돌아왔다(92년).
뉴욕을 탐색하러 떠난 5개월 일정이 5년으로 늘어났고 고학해야 하는 현실은 하루 3시간 이상의 잠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5년간의 이 고단한 여정은 교육연극을 우리나라에 최초로 소개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셈이며, 대학강단에 서게 되어 늦게나마 부모님과 나의 꿈을 동시에 이루게 하였다. 이 정도면 푸른 초원이 눈앞에 펼쳐질 듯도 하지만 「교육연극학과」를 설립해서 정통파를 길러내야 하는 숙제가 지금 내 앞에 산처럼 서있다.
박은희 <연출가·교육연극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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