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맥주’ 건배”
-교황 베네딕토 16세 생가 방문
5월 9일 오후 3시. 우리 순례단 일행은 새로운 역사의 현장에서 서 있었다. 동부 독일 바이에른 주 마르크틀 암 인, 바로 현 교황 베네딕토 16세 생가 앞이다. 주소를 보니 Markt Platz 11. 아담한 2층에 조그만 옥탑방이 있는 집이었다. 베네딕토 교황님은 이 집에서 1927년 4월 16일 태어나서 2년간 사셨다고 한다. 이 집도 전임 요한바오로 2세 생가와 마찬가지로 바로 성당 옆에 자리잡고 있었다. 「교황이 되려면 성당 가까이서 태어나야 하나」하는 마음이 퍼뜩 스쳐갔다.
교황으로 선출된지 얼마 안되서 그런지 집 오른쪽 벽에 「요셉 라칭거 추기경이 1927년 4월 16일 태어났고 1997년 7월 13일 명예시민이 되었다」는 내용의 동판이 그대로 붙어 있었다. 이 작은 마을에서 교황님이 나셨다는데 대해 주민들은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현 집주인은 『아무래도 집을 팔아야 할 것 같다』고 걱정스레 말하는가 하면, 길 건너 맥주집 주인은 「한몫 잡을 수 있음」(?)을 슬쩍 비치기도 했다. 교황으로 선출되자마자 맥주 이름을 「Papst Bier」(교황맥주)로 바꾸고 병위쪽에 교황님 사진이 든 라벨을 붙여 순례객들에게 팔고 있었다. 우리 일행도 그 맥주집에 들어가 500cc 맥주 한잔씩 시켜 교황님을 위해 힘찬 건배를 외쳤다.
우리는 참 복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의 순례 길에 두 분 교황님의 생가를 방문할 수 있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동유럽 성지순례 계획을 구상한 것은 2년전부터 였다. 민흥기(바오로) 단장이 계획을 세우고 관광공사 지사장으로 독일에 오래 살았던 신원식(베드로) 형제가 전 코스를 꼼꼼히 검토하여 확정한 것이다. 여행사 선정문제도 한국 일반여행사, 유럽 현지여행사, 가톨릭신문사를 놓고 깊이 따져 본 끝에 우리들 모두가 신자이고, 60대 후반이 주축이라는 나이도 생각해서 가톨릭신문사로 결정한 것이다.
베네딕토 16세 교황 생가 방문의 기쁨과 감격을 안고 우리 일행은 알퇴팅 수도원 막달레나 성당에 가서 가슴 벅찬 미사를 봉헌했다. 알퇴팅은 바이에른 지방에서 가장 신심이 깊은 곳이고 교황님 생가에서 20km쯤 떨어져 있는 성모발현성지로 알려져 있다. 700년경에 세워진 이 성당에는 바이에른 영주들의 심장을 담은 은궤들로 장식되어 있고 제단 가운데는 검은 색 옷을 입은 성모상이 모셔져 있다. 1489년 가을, 물에 빠져 죽은 아이를 안고 온 부모가 성모상 앞에서 슬피 울며 애원하자 아이가 다시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고 그 소식을 들은 순례객들이 각지에서 몰려왔다고 한다.
베네딕토 16세 현 교황께서 5년동안 교구장으로 사목했던 뮌헨 성 마리아 대성당을 순례하러 갔다가 유학중인 신정훈 신부님(교의신학 박사과정)을 만나 한나절을 같이 보내는 기쁨도 맛 보았다. 우리 일행을 지도하는 우대근 신부님의 후배인 신신부님은 뮌헨 시내와 다카우 수용소를 안내해 주셨다. 「제2의 아우슈비츠」라 할만한 이 수용소는 유다인뿐만아니라 체제에 저항하는 인사 3만2000여명을 수용했으며, 성직자와 수도자 2000여명을 굶어 죽게 한 기록도 갖고 있다. 우리 순례단 일행은 처연하고 주체할 수 없는 마음을 안고 다음 순례지인 비스 성당으로 가서 미사를 드렸다.
류철희〈전 서울 논현동본당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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