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쥴리어스 시이저」를 공연한다고 하면 「시이저를 누가 하느냐?」 보다는 「안토니오를 누가 하느냐?」에 관심이 모아진다. 그 이유는 시이저가 암살당한 뒤에 안토니오가 긴 조사를 하기 때문인데 「그 긴 대사를 소화해 낼 수 있는 배우가 누구인가?」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1974년의 일이었다. 명동예술극장에서 「쥴리어스 시이저」를 공연할 때, 바로 그 암살 장면은 경사진 계단으로 만들어진 세트 맨 꼭대기에서 연출되었고, 시이저는 『부르터스 너 마저도…』라는 유명한 대사를 마치고, 연출선생님의 요구대로 계단 끝에 쓰러져 머리를 계단하나 아래로 젖힌 채 두 눈을 부릅뜨고 죽는다. 그러면 안토니오가 자세를 낮추어 시이저의 두 눈을 손으로 쓸어내리듯 감겨 주고 긴 대사를 시작한다. 안토니오는 경사진 계단을 걸어 내려오며 적절하게 대사를 이어가고 무대 앞쪽으로 이동이 되어 관객과 가까워진 자리에서 그 긴 대사를 끝내는 것이었다.
당시에 「안토니오」를 맡은 Y씨는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로마 장군으로서 손색없는 외모와 연기력으로 무대 위에서 빛이 났다. 그런데 망토가 문제였다. 두 눈을 부릅뜨고 죽은 시이저 앞에 자세를 낮추고 그의 눈을 감겨 줄때 망토자락이 자연스럽게 몸 앞쪽으로 흘러내렸고, 일어서서 객석 쪽으로 몸을 돌릴 때 역시 자연스럽게 한 손으로 망토를 제치며 대사를 하였다. 그러자 그 한 번의 손짓과 망토의 출렁임이 700명 가까운 관객으로부터 감탄을 자아낸 것이었다. 그 배우는 어려운 배역을 맡아 성공적으로 연기하고 뿌듯한 마음으로 퇴장했지만 그만 스승님으로부터 따귀를 얻어맞았다. 아직 젊은 이 배우는 관객의 감탄에 우쭐하여 긴 대사를 마치는 동안 두 번 더 망토를 제쳤으며 스승님은 그걸 용납하지 않으신 것이었다. 그때 무대감독을 맡았던 필자는 관객이 감탄한 배우가 스승으로부터 따귀 맞던 그 순간을 잊지 않고 교훈으로 삼고 있다.
박은희(연출가·교육연극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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