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접 본당간 지원·교류로 쾌적한 사목환경 마련해야
담은 그 집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중요한 기능이 있다. 사람들은 예부터 담을 쌓아 사람이나 동물이 침입하는 것을 방지하고, 낯선 사람들이 들여다보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좁디좁은 도시의 골목에서는 이른바 사생활을 보호해주는 이러한 담들이 여러 가지 역기능을 보이기 시작한 지 오래이다. 주차 문제로 인한 이웃들 간의 크고 작은 싸움이 끊일 날이 없고, 소방차의 진입이 어려워 주민들은 화재의 위험에 무방비상태로 살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또 좁고 어두운 골목길은 자칫 청소년들의 일탈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벽돌로 된 견고한 담은 집과 집 그리고 집과 골목길 사이의 물리적 공간을 차단할 뿐 아니라, 도시민들의 인간관계도 차단한다. 몇 년 전부터 전국의 여러 도시에서 관공서나 대학들이 담을 허물어 녹지공간을 조성하고 인근 주민들을 위해 휴식공간을 제공했다.
주민들도 스스로 담을 헐고 골목길을 넓히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요즈음 어느 방송에서도 담허물기 프로그램을 방영하였는데, 조금 억지스러운 점도 없진 않았지만, 「담을 허문다」는 것이 인간의 삶에 주는 의미를 새삼 생각하게 한다.
이웃들이 서로 합의하며 담을 허물면서 얻게 되는 소득은 자신만의 영역을 고수하면서 얻었던 폐쇄적 안정감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요롭다.
주차의 여유로움, 각자의 마당과 골목길이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넓은 녹지공간은 말할 것도 없고, 벽돌담과 함께 허물어지면서 싹트게 된 이웃들 간의 정을 빼놓을 수 없다.
세상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작은 변화를 바라보면서 우리 교회의 역할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많은 신자들이 교회를 친교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도대체 친교란 무엇인가? 친교는 라틴어로 콤무니오(communio)인데, 교회는 이를 두고 통공(通功)이라고도 한다.
쉽게 말하자면 친교는 잘 통하는 것이다. 전기선을 통해 전기가 흐르고, 인터넷 망을 통해 온 세상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듯이 막힘이 없이 통하는 상태를 말한다.
친구들끼리 서로 말이 통하고, 이웃들 사이에 정을 나누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그분을 매개로 하여 서로 가진 것을 나누고 공유하면서 서로 잘 통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천국에 있는 이들이나 연옥에서 정화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이들이나 아직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 모두 서로 공(功)을 통하는 것이다.
서로 통하는 관계를 맺은 이들 사이에는 어떤 막힘도 없으며, 영적인 보화뿐 아니라 돈이나 시간, 공간 등 무엇이든 서로 주고받으며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교회 생활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성체성사야말로 바로 이 통함(communio)을 실행하는 것이 아닌가!
교회는 이미 이 세상 안에 시작된 하느님 나라의 「싹과 시작」(교회헌장 5항)이다. 과연 교회가 세상 사람들의 친교의 모범이 되고 있다고 자신 있게 외칠 수 있는가? 우리 가톨릭교회는 잘 조직된 공동체로 보인다.
예를 들어 한 교구는 지역별로 구획이 잘 되어 있는 본당들을 통해 나름대로 강력한 연결망을 형성하고 있다. 그래서 주교들의 가르침과 지도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한 목소리로 세상에 대해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까이 들여다보면, 이웃 본당들과 별 연결 없이 독자적으로 움직임으로써 큰 힘을 내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대도시의 경우에 본당의 경계를 금과옥조처럼 받드는 것이 과연 최선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학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라면 대학생, 노인층이 많은 지역에서는 노인들, 그리고 청소년들이 많은 지역에서는 청소년에 초점을 맞추어, 이들에 맞는 적절한 프로그램과 공간을 공동으로 마련함으로써 좀더 효율적으로 사목현장에 대처할 수 있지 않을까?
모든 본당이 노인, 청년, 청소년, 어린이, 유아 등 다양한 연령층을 골고루 배려하면서도 이웃본당들 그리고 교구 전체와 잘 연계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급변하고 있는 생활환경과 지역의 특성이나 여건, 그리고 사목자들의 능력의 한계 등을 고려한다면, 인접해 있는 본당들이 본당사목구의 경계의 「담」을 헐고 좀 더 넓고 쾌적한 사목현장을 마련하여, 이웃본당의 특성을 살려주고 지원함으로써 특성화하는 것이 변화하는 세상에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하는 현실적인 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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