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나눔·은총·사랑·복음”
가끔씩 신자들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신부님은 사제 생활하시면서 어떤 때가 제일 힘드세요?』
신부님들마다 각각 대답은 다를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두 가지 경우가 있다.
첫째는, 병자성사를 집전할 때이다. 특히 새벽에 전화를 받고 응급실이나 중환자실에 급히 달려가서 갑작스런 사고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에게 병자성사를 집전할 때 이다. 이제 겨우 세 살, 네 살 된 아이들을 두고 떠나야 하는 사람을 보면 무슨 말로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마음이 아프다.
두 번째는, 사형장에서 사형수를 만날 때이다. 차라리 만나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죽기 싫다고, 죽음이 무섭다고 그래서 살려 달라고 수단자락을 붙잡고 울부짖는 사형수의 모습. 그 모습들을 잊을 수가 없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 주어야 할지 마음이 참담하다.
본질적인 물음들
15년이란 짧은 시간 동안 사제로 살아오면서 이런 두 가지 경우와 마주칠 때 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인간생명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이다. 『왜 인간은 태어나고 죽어야만 하는가?』, 『왜 인간은 비참하게 혹은 억울하게 죽어가야 하는가?』, 『생명과 죽음의 의미는 무엇인가?』, 『인간생명은 도대체 무엇인가?』
히브리어에 따르면 생명(生命, life, vita)이란 무엇보다도 죽음의 반대 개념으로 표현한다. 동시에 생명은 하느님과 그리스도로부터 나오는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을 의미한다.
이렇게 생명을 이해하는 생명관은 시대적으로 많은 변천과정을 거쳤다. 고대의 생명관에 따르면 생명의 근원을 「정령」이라 하였고, 이 정령은 땅 속, 물 속, 대기 속 등 모든 곳에 숨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고대 그리스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를 비롯해서 아리스토텔레스, 갈레노스 등은 생명을 신성한 것으로 이해하고 가르쳤다. 그리고 근세의 생명관에 있어서 데카르트 등은 생명현상에 초자연적 원리의 개입을 부정하고, 생명은 물질적 현상이 복합되어 이루어진다는 생명기계론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현대에 와서는 생명의 자연 발생설을 주장하면서 우주 기원설을 부정하고, 지구에서의 물질의 진화, 특히 유기 화합물의 진화의 결과로서 생명을 설명하고 있다.
교회의 가르침
오늘날 가톨릭 교회는 인간생명에 대해서 이렇게 가르친다.
첫째, 생명은 「선물」이다. 인간생명은 무엇보다도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선물인 것이다. 인간에게 거저 주어진 가장 위대한 「선물」이 바로 「생명」인 것이다.
둘째, 생명은 「나눔」이다. 하느님으로부터 거저 주어진 선물인 「생명」을 우리는 또다시 자신과 가족과 이웃과 나누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생명은 더욱 더 풍요로워지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렇다면 생명을 어떻게 나누어야 할까? 그것은 바로 부부사랑을 통한 자녀 출산, 부부간의 참다운 사랑을 통해서 가능하다. 그리고 부모와 자녀간의 사랑의 나눔과 나와 이웃을 위한 봉사, 희생, 봉헌 등을 통해서 가능하다.
셋째, 생명은 「은총」이다. 무엇보다 인간 생명은 하느님의 모상으로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존재로서 「영원한 생명」, 곧 구원에로 초대된 하느님의 은총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인간 생명은 존중되고, 존엄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다. 여기에 인간 생명의 특성인 신성함과 불가침성이 드러나게 된다. 따라서 인간은 그 자체로 목적이지 결코 수단이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과 기술은 오로지 인간 생명의 존엄을 위해 발전되고 존재하고 봉사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과학의 목적이다!
넷째, 생명은 「사랑」이다. 사랑이 없는 생명은 없다. 사랑이 없이는 생명이 존재할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사랑이 없으면 생명을 살릴 수가 없다. 결국 사랑이 없으면 죽음 밖에 없는 것이다. 사랑만이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힘이자 원천이다.
다섯째, 생명은 「복음」이다. 복음이란 기쁜 소식, 곧 하느님 나라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무엇에 대한 기쁜 소식인가? 바로 생명에 대한 기쁜 소식이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기쁜 소식이다. 따라서 생명은 복음이며, 복음은 곧 우리를 영원히 살게 하는 생명이 된다.
다시 요약하면, 생명은 하느님의 「선물」이며, 「나눔」이며, 「은총」이며, 「사랑」이며, 「복음」이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생명 앞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생명은 결코 임의적인 것이 아니다. 오직 그것은 하느님의 창조로 이루어진 것이며 하느님께만 유보된 절대적인 것이다.
『나는 생명의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요한 6, 48~51).
가끔씩 하늘에서 이런 전화가 걸려온다.
『제발, 빵 값 좀 해라!』
이창영 신부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위원·본지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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