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봄, 산중턱 외딴 곳에 작은 집 한 채 짓고 조용히 살았으면 하는 꿈을 기록한 일기가 연때를 만나 현실이 되었습니다. 지난해 아들과 딸이 다니는 간디학교가 내려다보이는 경남 산청군 신안면 외송리 산중턱에 흙과 나무로 된 집 한 채를 지었습니다.
『심심할 때면 날 저무는 언덕에 올라 어두워오는 하늘을 향해 나팔을 불었다. 발밑에는 자옥한 안개 속에 학교의 지붕이 내려다보이고』 하는 학교 때 배운 시를 실감나게 읊을 수 있는 곳입니다. 당호도 정했습니다. 「이레!」. 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제사 이야기를 읽으며, 『야훼께서 이 산에서 마련해 주신다』(창세 22, 14)는 「야훼이레」라는 낱말에 나름대로 의미부여를 해본 것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산골 학교에다 바쳤더니(?)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해 주신」 집이라고.
오빠를 따라 비인가 중학과정을 마치고 검정고시를 치른 뒤 대안학교의 대명사처럼 알려진 이곳 간디학교에 입학한 딸아이는 기숙사에서 공동생활을 배우고 2학기부터는 집에서 통학하겠다고 즐거워합니다. 옷도 짓고 찾아오는 손님들 치다꺼리도 하며 살고 있는 아내는 교회 잡지에 드문드문 글도 써서 도회지 독자를 설레게 하기도 했습니다.
자식을 대안학교에 보내더니 놓아두면 값이 오를 서울 아파트까지 판다고 주위에서는 걱정스러워했지만, 막상 집을 짓고 아이들도 행복한 모습으로 커가는 걸 보면서 부러움 반 시샘 반으로 한마디씩 합니다. 이른바 서울 「한총련(한시적 총각 연맹)」 소속으로 주중 총각 노릇을 하는 게 딱하게 보였는지, 아니면 사오정의 나이를 넘겨 오륙도까지 계속해서 직장에 붙어있을 듯한 눈치가 보였는지 『빨리 정리하고 시골 내려가라』고 말입니다.
주말마다 이 좋은 집에 내려가도 머릿속은 잡지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사람을 만나도 독자 아니면 필자로 모실 생각부터 하게 됩니다.
『긴긴 세월 조롱 속에서 살다가 나 이제 자연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아직은 쓸 때가 아닌가 봅니다. 한번 놀러 오십시오!
배봉한(경향잡지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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