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에게 양보하고 희생할 때 삶의 여유 생겨
내가 미국의 수련 의사로 고용되어 고국을 떠난 것은 1960년대 중반이었다. 미국에 도착한, 가난한 나라에서 온 나는 의학실력도 의술도 부족했고 언어 소통도 서툴렀다.
그러나 미국 생활의 첫 몇해 동안 내가 이런 열등감을 이겨내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이겨내게 된 것은 내가 양반의 나라, 여유로운 훌륭한 조상의 후예라는 이상한 자부심 때문이었다.
미국의 풍요는 40년전 고국을 떠난 내게는 미국 땅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 아무데서나 볼 수 있었고 느낄 수 있었다. 요즈음의 유학생들과는 다르게 그 때는 고국이 많이 가난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와중에서도 내가 한국인이라는 자각이 내게 힘이 되어준 것은 바로 그 화려한 풍요의 사이 사이에 보이던 미국인의 획일적이고 개인주의 같은 생활의 경직성 때문이었다.
삶의 모든 규정과 판독은 과학이었고 기계 우위였고 돈 위주 였다. 사람들은 잘 살고 못사는 것에만 목을 매고 있었고 눈에 보이는 풍요를 찾아 허우적 거리는 사람들은 모두 바쁘기만 했다. 극심한 경쟁 사회에서는 소가족 제도와 개인주의가 판을 칠 수 밖에 없었고 여기서 파생되는 인간 관계의 불신과 소외감은 어디서나 넘쳐나고 있었다.
동료 의사라는 친구들도 환자와의 인간 관계에서 얼음같이 차갑기 일쑤여서 내가 한국에 있을때 보고 경험했던 고국의 선배 의사들의 따뜻한 환자 보살핌을 다시 상기해 보곤 했다. 그리고 40년이 지났다.
나는 그런 사회에 살아오면서 미국 사회에 차츰 익숙해졌고 물질 만능과 과학 만능만으로 이루어 졌던 미국 사회가 많이 변해 온 것도 알고 있다. 의과 대학의 교과과정에는 문학과 철학이 들어가고 사회는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공중도덕과 병약자 보호에 관심을 한층 더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내가 최근 수년간 꿈에도 잊지 못하던 고국에 돌아와 일년의 반씩을 살아오면서 어쩔 수 없이 느끼는 어색함은 외국에 너무 오래 살았다는 점도 있겠지만 내가 미국에 처음 왔을때의 생활이 그대로 상기되는 이상한 기분도 한 몫을 하는것 같다.
고국의 일상에서 나는 물질주의와 권력과 명예에 대한 과욕이 60년대 보다 확실히 더 두드러지게 느껴졌고 그런 외적 조건들이 인간 관계를 횡적인 관계보다 종적인 관계로 만드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 사람은 나보다 돈이 더 많으니까 내 위에 군림할 수 있고 저 사람은 나보다 명예가 뒤지니까 내가 깔 볼 수 있다는 의식이 공공연히 보이고 그래서 한푼이라도 더 벌고 더 윗자리에서 존경과 부러움을 받기 위해 모두가 촌음을 아껴 발버둥 치며 바쁘게 싸도는 생활인이 많이 보였다.
그 어느 나라에서 40대 후반의 간부급 회사원이 은퇴를 강요당해 포장마차 장수를 준비해야 하는가. 내 출세를 위해, 내 이익을 위해 남이야 어찌되든 알바 아니라는 풍조가 횡행하고 있는 것인가.
서울이고 지방이고 자동차를 타면 차선을 지키며 운전하는 차보다 남보다 한발이라도 먼저 가려고 운전 수칙을 어기는 운전자가 더 많고 출퇴근 시간에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 모두가 나부터가 먼저고 남은 안중에 없는 탓이리라.
IT 산업이 세계 최고인 탓도 있겠지만 인구 당 핸드폰 사용자 역시 세계 1위임에는 틀림이 없다. 모두 부산하고 바쁘고 정신이 없다. 걸을 때도 쉴 때도 뛸 때도 무슨 사업이 그리 바쁜지 소리를 지르며 전화를 거느라고 바쁘다. 여유로운 시간이 너무나도 없다. 꽃을 볼 시간도 구름을 볼 시간도 없다.
일이 뜻대로 안된다고 또 자신의 프라이드를 구겼다고 앞뒤 생각없이 툭하면 한강에 뛰어들어 죽고, 수능 시험점수가 나쁘다고 고층 아파트에서 학생이 투신 자살을 한다. 언제부터 있어온 극심한 경쟁의 부산물인가. 이것이 선진국으로 가는 풍경인가.
오래전에 어느 신부님이 쓰신 글이 기억난다. 『여유로움은 귀한 것이고 자아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이다. 삶의 여유는 삶을 즐기게 하고 행복하게 한다. 여유없이 바쁘다는 것은 허겁지겁 남의 뒤만 쫓아다니기 때문이다』
내 삶의 여유는 그러나 누구의 여유를 빼앗는 것이 아니고 신기하게도 상대방에게 내 것을 양보하고 내가 손해를 보고 남에게 내것을 줌으로써 얻을 수 있는 요상한 것이다. 가지고 있는 물건과 돈을 움켜 쥐어서 만지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내어놓고 나눔으로써 드디어 가슴으로 따뜻하게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여유는 향기로운 내 삶의 활력제가 되고 내일을 볼 수 있는 초자연적인 시력까지 우리에게 자주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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