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와 부와 권력은 허망한 것”
작년에 「황산벌」이란 코믹영화를 본 적이 있다. 신라 김유신 장군과 백제 계백 장군과의 황산벌 전투를 코믹하게 다룬 영화다. 무엇보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신라군과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백제군과의 대화는 실로 박장대소(拍掌大笑)를 터트릴 만하다.
그런데 나에게 큰 인상을 남긴 대사가 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계백 장군의 아내가 남긴 말이다. 황산벌 전투를 앞 둔 계백 장군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면서 그의 아내와 아이들을 먼저 죽이려 하자 아내가 이런 말을 했다.
『호랑이는 가죽 때문에 죽고, 사람은 이름 때문에 죽는다』
그렇다. 어쩌면 사람들은 자신의 명예 때문에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 명예를 위해서 안 될 일도 서슴지 않고 하고 있다.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다. 그래서 때로는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 죽음도 불사한다. 도대체 그 놈의 명예가 무엇이길래….
오늘날 생명과학은 무엇이든 가능하다고만 생각되어지면 수단을 문제 삼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방법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세계는 물론 국내 몇몇 유명 생명 과학자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노력한다. 방법이야 어떻든 간에, 수단이야 어떻든 간에 목적만 달성하면 그뿐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않는 진정한 인간의 자유 범위와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일부 생명과학자들은 왜 아직도 인간배아가 생명이 아니라고 주장하는가? 무슨 근거로 인간배아가 세포라서 실험하고 조작하고 복제할 수 있다고 하는가? 여러 생명과학자들도 함께 동의하지 않는 것을 그들은 왜 진리인 것처럼 주장하는가? 종교적 가르침과 윤리학자들의 경고를 무시한 채 그들은 무엇 때문에 인간배아를 죽이고 있는가?
인간배아가 생명이 아닌 세포라고 주장할 수 있는 객관적 근거는 어디에도 찾아 볼 수가 없다. 인간배아가 세포라서 마음대로 조작하고 실험하고 폐기하고 복제 할 수 있다는 정당성은 그 어디에도 찾아 볼 수가 없다. 묻고 싶다. 정말이지 그들의 양심에 묻고 싶다. 인간배아가 세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인간배아가 생명이 아니기 때문에 전혀 양심에 거리낌 없이 죽여도 된다는 일부 생명과학자들과 정부관계자들에게 묻고 싶다. 『왜 당신들은 그런 일을 합니까? 당신들은 진정 무엇 때문에, 무슨 목적으로 그런 일을 합니까? 난치병 환자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자신의 명예 때문입니까?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자신의 명예와 권력과 부 때문이 아닙니까?』라고.
생명과학이 새로운 종교가 되고 생명과학자들이 새로운 제사장이 되어 인간의 가장 본질적이면서도 심오한 문제에 대한 판결을 내리려고 한다면 그 결과는 인류 전체에 대한 재앙이 될 것이다.
단순한 기술적 한계의 결과로 초래되는 사회적 혼란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그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인류를 바른 길로 인도해주는 하느님이 가르쳐 주신 「진리의 길」이 아니라 자기파괴를 낳을 그릇된 길로 이끌어 궁극적으로는 하느님께서 세워주신 질서를 파괴시키는 것이다.
생명과학의 눈부신 발달의 성과를 교회도 인정하고 있다. 오늘날 인류는 유사 이래로 고도로 발달한 물질문명의 혜택을 누리고 있으며 이에 생명과학은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병을 치료하고 고통을 덜어주며 영양실조로 생기는 문제들을 해결하고 지구 자원을 더 잘 활용하는 방향으로 과학 연구가 진행될 때, 인간에게 유익을 주고 인류의 희망을 대변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물질적 풍요가 인간 정신의 풍요를 직접 이끌지 못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현대 사회의 인간소외 현상이 기술문명이 발달한 선진국에서 오히려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인간배아 복제를 추구하는 생명과학자들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배아 파괴 곧 인간성의 파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일을 도모하고 있다. 자연의 파괴와 마찬가지로 인간성의 파괴는 하느님의 창조사업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돌이킬 수 없는 가장 큰 죄악이다.
2002년 12월 26일, 최초의 복제 인간인 이브(Eve)를 탄생시켰다고 주장했던 브리지트 부아셀리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생명과학의 발전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과연 생명과학의 발전이 진정 「누구를」 그리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에 대한 근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질문에 대한 답이 결여된 채 이루어진다면 그 결과에 대해 오히려 두려움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일부 생명과학자들은 자신의 명예와 권력과 부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자신의 명예를 높이기 위한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생명을 죽이는 일에도 거리낌이 없다. 남들의 생명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부를 위해서라면.
명예가 곧 인간 삶의 가치를 드러내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신만을 위한 명예는 한낱 허상에 불과할 뿐이다. 따라서 명예가 우리 인생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그것이 우리 삶의 본질이 될 수는 없다. 그러기에 자신의 명예만을 쫓는 삶은 참으로 불행하다. 자신의 권력과 부를 추구하는 삶은 허무할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의 삶은 진리를 위한, 진리를 향한 삶이어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의 삶을 보다 행복하게, 보다 가치 있게 이끌어 줄 것이다.
『호랑이는 가죽 때문에 죽고, 사람은 이름 때문에 죽는다』
이창영 신부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위원·본지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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