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강에서 금강산까지
“종교간 평화 확산에 씨앗되길”
「다름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종교인들이 다함께 배낭을 메고 나섰다. 지난 8월 17~20일 3박4일에 걸쳐 파주, 연천, 철원, 속초, 금강산으로 떠난 평화기행은 광복 60주년과 6.15공동선언 5주년을 맞아 통일의 도정에 선 우리의 좌표를 다시 확인하고 대립과 분단의 현장을 화해와 통일의 장으로 되살리는 작업이었다. 바람결, 숨결, 물결…. 「결」은 상황 속에서만 느낄 수 있다. 우리는 분단의 아픔과 고통을 지나 역사의 결, 평화의 새 결을 만난 셈이다.
첫날 오두산전망대에서 한강 하구, 임진강, 서해바다를 한 눈에 내려다보며 정전협정에 의하면 한강 하구수역이 쌍방 민간선박의 항해가 가능한 곳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무척 놀랐다. 비무장지대를 자연스레 중무장지대로 연상하는 우리 눈이 이미 군사분계선을 선명하게 그어 놓았나보다. 반드시 그곳에 평화의 배를 띄워보리라 다짐을 하며 임진각으로 향했다. DMZ전시관, 제3땅굴, 도라산 전망대, 도라산역을 돌아보는 민통선체험을 하면서 한 장면이 잊혀 지지 않는다. 녹슨 철모에 난 구멍을 비집고 보란 듯이 살아올라온 야생화 한 떨기는 공존과 상생만이 살 길이라는 진리를 온몸으로 호소하는 듯 했다. 숙소에 도착해서는 지뢰피해자 이덕준 할아버지를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SOFA 제4조2항 「원상복구불이행」 조항에 따라 미군들은 지뢰를 제멋대로 묻어놓고 무책임하게 떠났다. 대책과 보상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우리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
둘째 날 일정은 지뢰밭을 마을 한 가운데 품고 사는 노곡리부터 시작했다. 주유소, 교회, 놀이터, 심지어 저수지 밑까지 모두 지뢰밭이다. 지뢰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지뢰제거특별법, 전면적 지뢰금지 조약에 이르도록 노곡리 지뢰마을은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안겨주었다.
남북이 절반씩 지어 완성한 승일교도 걸어보고 태풍전망대 등을 돌아보며 몸과 마음을 새로이 한 우리는 다시 민통선으로 가서 제2땅굴, 월정리역을 지나 철원시로 향했다. 철원 노동당사는 화해와 통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더 이상 이념, 체제 대결의 상징물이 아닌 해방에 이은 살아있는 자치 공간으로 남을 것이다.
셋째 날은 새벽 4시부터 분주하게 떠날 채비를 해야 했다. 임진강에서 시작해 철책을 따라 이어졌던 평화기행이 드디어 군사분계선을 넘어 육로로 금강산을 가는 순간이기에, 피로도 잊었다. 육로로 가는 금강산은 너무도 가까웠다. 북측출입사무소에서 만난 인민군 아저씨의 농담에 긴장과 피로가 녹는 듯하였다.
그렇게 도착한 금강산 첫날 산행은 구룡연에 오르는 것이었다. 비를 원없이 맞으며 씩씩하게 올랐던 구룡연. 고맙게도 비가 와줘, 비가 올 때만 볼 수 있는 산폭포들도 심심찮게 보았다.
금강산 맑은 기운에 몸과 마음을 깨끗이 정화하며 첫날부터의 평화기행을 곱씹어 본다. 누가 먹던 건지 모르는 먹다만 주먹밥은 더럽게 보여서 먹을 수 없지만 누가 먹던 건지 알고 있다면 그 주먹밥은 먹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서로 잘 알고 있다는 것이 큰 밑천이듯 이제는 미움을 날려버리고 서로 보듬을 일만 남았다.
마지막 날 해가 밝자마자 우리는 기암괴석의 모양이 시시각각 변한다는 만물상 등반을 위해 산행채비를 했다. 산행길은 크고 길쭉한 바위들을 하늘에서 뿌려놓은 듯 웅장한 느낌이었다. 산행을 두 번이나 했지만 무언가 아쉽다. 이 아쉬움들을 고리로 해서 다시 오리라 마음을 다독여본다. 출입사무소에서 만난 인민군 언니와 눈으로 인사를 하였다.
아아, 하느님 감사합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내내 감사기도를 드렸다. 우리는 함께 꾸는 꿈의 놀라운 힘을 믿는다. 이번 평화기행을 통해 우리 종교청년 한사람 한사람이 각자의 종단으로 돌아가 「종교간 평화」 와 「통일문화 확산」에 씨앗이 되어 녹아들기를 소망해본다. 강이 여러 갈래지만 결국 바다에서 만나듯….
아멘.
-박민주(글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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