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존엄과 생명이 함께 존중받는 미래를 위해
광복 60주년을 경축하는 8월을 지내면서 지난 60년간의 사회변화를 나타내는 통계자료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 그것은 광복 당시만 해도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제로 상태였던 대한민국이 그 후 60년간 실로 눈부신 발전과 변화를 이루어 낸 것에 대한 자긍심의 표현이랄 수도 있겠다.
볼펜 한 자루도 만들지 못할 정도로 산업기반은 전무였고 식량과 생활필수품조차도 절대 부족했던 우리나라가 이제는 국민총생산 세계 11위, 수출액 세계 12위의 무역대국이 되었으며, 철강. 정보기술, 반도체 등의 분야에서도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며 「기적의 국가」로 평가받게 되었다는 뿌듯함을 온 국민에게 안겨주고 있다.
그런데 소개되는 각 분야가 대부분 경제생활과 직간접으로 관련된, 곧 삶의 질과 관련된 분야라는 것이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그것들의 통계치는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대단한 비약을 하였고, 또 60년 전에 비해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었으며, 한걸음 더 나아가 더욱 건강하고 풍요롭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자랑스럽기는 하다. 그러나 물질주의의 팽배로 인한 인간의 도구화와 인간 존엄성의 상실이라는 어두움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마는 이 발전이 두려운 것도 사실이다.
우리 사회의 모든 기준이 「삶의 질」 향상에 맞추어져 오늘에 이르렀고 과거에 비해 경제적 풍요로움을 얻었다고는 하나 정작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이며, 잃은 것은 무엇인가도 되돌아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삶의 질」은 정신. 육체. 사회적 조건에 대한 한 개인의 만족스러운 또는 만족스럽지 않은 마음의 상태에서 언급되는 개념이다. 이에 따르면 높은 삶의 질은 고통스럽거나 비참한 상태를 제거함으로써 성취되며 삶을 만족시킨다. 실제로 광복 후 수십 년 동안 우리 국민의 삶은 끔찍하리만큼 비참한 삶이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 맸고, 그 결과 오늘처럼 풍요로움을 자축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지만 마냥 기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그 풍요로움을 이루는 동안 어느 새 우리 사회의 모든 평가 기준이 「삶의 질」이 되어버림으로써 참된 인간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높은 소득과, 멋진 자동차, 또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는 높은 「삶의 질」이겠지만, 이러한 삶이 인간의 궁극적 행복과 동일시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광복 60주년을 경축하는 우리 사회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마치 「삶의 질」 향상이 최대의 과제인 양 모든 정책과 시스템이 거기에 올인하고 있지 않는가. 그럼으로써 우리 사회에서 그 주역인 인간은 서서히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버리고 있는 듯하다. 인간다운 삶을 위한 경제 활동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목적인 인간 자신의 인간다운 삶은 찾아볼 수 없으며, 활동의 결과물만 남아 있는 이 세상이 심히 염려스럽다.
「삶의 질」 기준은 생명윤리 분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미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안락사 지지에 대한 사고방식이나, 인간 배아를 단순한 세포덩어리로 간주하는 우리나라의 부끄러운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환자의 주위 사람들이 임종을 앞둔 말기환자들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덜어주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질적인 삶이 거의 다 되었으니…」라는 생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전혀 이상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또 우리나라는 「삶의 질」 향상이라는 미명아래 온전한 인간 생명인 배아의 파괴까지도 법으로 보장하니 「삶의 질」 기준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일부 생명윤리학자들은 『삶의 질은 적어도 지적 능력과 자기인식, 자기 통제, 의사소통능력, 대뇌피질 기능을 지닌 인간 생명에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그러한 능력을 표현하지 못하는 인간 생명도 가치가 있는지 또는 그러한 생명도 보호하고 보살필 의무가 있는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선을 향유하고 행복에 이르는 정도에 따라 평가하든, 또는 전형적인 인간의 활동과 능력 정도에 따라 평가하든, 이러한 삶의 질 기준은 결국 인간의 가장 심오한 존재론적, 비공리적 차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삶의 질이 때로는 「좋은 삶」, 「행복한 삶」, 「즐거운 삶」, 「가치 있는 삶」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그것이 질적인 구분에 의한 상대적 평가라면 당연히 거부되어야 한다. 광복 60주년을 지내면서 우리가 또 다른 미래의 60년을 준비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존엄과 생명이 함께 존중받는 참된 의미의 인간 발전을 향한 도약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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