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학교에 대한 전 교회 차원 관심과 지원 아끼지 말아야
주일학교가 새 학기를 시작했다. 학교가 개학을 하였으니 주일학교도 개학을 하는 것이 특별할 것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9월이 주일학교 운영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대부분의 주일학교가 7~8월의 뜨거운(?) 여름을 뒤로 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많은 교사들이 이 시기에 하는 각종 행사들을 소화하느라 종종걸음을 치며 비지땀을 흘리고, 학생들을 통솔하느라 목이 가라앉도록 소리를 지르면서 그동안 비축했던 에너지를 남김없이 쏟아 붓는다.
물론 모든 교사회가 지금쯤 지리멸렬에 빠져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본당 안팎에서 치러진 행사들로 많은 교사들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지쳐 있는 것이 사실이다.
새학기의 중압감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충전이 필요하다. 이런 때에 우리 한국교회가 9월을 순교자 성월로 지내는 것은 주일학교교사들의 연중리듬과 절묘하게 잘 맞춰져 있다는 생각이 든다. 순교자 성월이 영육으로 지치고 공허해진 교사들에게 순교자들의 삶을 기억하고 자신을 차분히 돌아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순교자(殉敎者)라는 말에서 순(殉)이란 뒤따라 죽는 것을 말한다. 순교자들은 말 그대로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의 목숨도 아끼지 않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뒤따라 죽음을 선택한 분들이시다.
사실 그리스도 신앙인들이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로서 근본적으로는 모두 순교자이어야 한다. 그렇지만 신앙 때문에 구속되거나 사형에 처해질 일이 없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순교」가 어떻게 가능할까? 그러나 서양어의 순교에 해당하는 단어의 뿌리인 희랍어 「마르티리아」(martyria)를 살펴보면 순교가 오늘날에도 가능한 일임을 알 수 있다.
「마르티리아」는 신약성서에서 설교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당당하게 증거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러니까 주일학교 교사의 길은 곧 「순교」의 길인 것이다. 교사들이 주일학교에서 하는 일, 다시 말해서 교회가 전해주는 신앙의 내용을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전하는 일이야말로 신앙증거행위, 「마르티리아」이기 때문이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처럼 육체의 죽음으로써 신앙을 증거하지는 않더라도 주일학교를 위해 다른 많은 개인적인 일들을 희생하며 봉사하는 주일학교교사들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많은 증거자들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바오로 사도는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내 편지에 『나는 살아있지만 이미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당신 자신을 바치신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한 신앙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갈라 2, 20)라고 쓰셨다.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사시기 위해, 다시 말해서 참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죽어야』 한다. 어떻게 죽느냐 하는 것은 각자에게 주어진 일이나 환경 등 삶의 맥락 안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신앙의 증거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교사들의 자기 이해도 중요하지만, 교회의 모든 구성원들, 특히 교회의 어른들과 부모들이 잊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주일학교의 지속적인 발전을 자원봉사 교사들의 자발적인 희생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일반학교에서 가톨릭신앙교육의 혜택을 받는 학생들이 매우 적은 우리 한국교회에서 주일학교는 자라나는 세대를 위해 거의 필수적인 신앙교육의 장인만큼 전 교회적인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거창한 것은 일단 접어두더라도 이번 새 학기를 맞이한 교사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지난 학기와 여름 행사로 지친 교사들을 위해 본당신부님과 본당의 원로들 그리고 부모들이 함께 힘을 모아 친교의 자리를 마련하여, 그 동안의 일에 대해서 듣고, 그에 따른 고충과 아픔도 함께 나누며 격려와 지원을 약속할 수는 없을까?
이제 곧 한가위다. 한가위 보름달처럼 꽉 찬 성당에서 기도와 성가를 목청껏 바치는 아이들의 모습과 활기찬 목소리로 왁자지껄한 교리실을 떠올려본다.
주일학교 교사들이 아무쪼록 지난 여름 동안 키도 크고 마음도 깊고 넓어졌을 아이들과 함께 생기 넘치는 새 학기를 맞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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