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사목 신부, 고국 떠나 힘든 신자들의 유일한 등대
40년전 미국에 와서 처음 찾아 들어간 천주교회에서 나는 기타를 요란하게 치는 청바지의 10대 청년들 때문에 혼비백산한 일이 있었다. 이들은 미사중 내내 성가를 이끌었는데 나는 나라가 다르다고 천주교 예식이 어쩌면 이렇게 까지 다를 수 있을까 하고 한동안 의아해 했었다. 미국의 중소도시에 살았던 나는 이렇게 해서 20년 이상 미국 사람들이 나가는 성당만 드나들면서 그 식으로 길들어 갔다.
그러다가 몇 해 마다 아버지의 산소 일이 걱정돼 일시 귀국을 하고 한국 성당에 가서 주일 미사에 참석을 할 때면 나는 창피하게도 거의 언제나 눈물을 흘리곤 했다.
신부님의 한국말 미사도 귀에 살갑지만 어디선가 들리는 아름다운 우리말의 성가대 합창은 합장을 하고 있는 내 손까지 떨리게 하고 두 눈에서는 봇물 터지듯 자꾸 흘러내리는 눈물 때문에 종래는 미사 순서도 쫓아가지 못하고 주보로 얼굴을 가린 채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게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언젠가 미국 큰 도시에 사는 친구에게 했다가 마침 그곳에서 열렸던 피정과 성령세미나에 일주일간 참여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고 그것을 계기로 동네 한국 사람들과 성경을 같이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즈음 고속도로로 두 세시간 달려야 갈 수 있는 거리에 한국인 성당이 정식으로 세워지고 한국인 신부님도 부임해 오면서 우리는 한달에 두 번은 열일을 접어두고 그 성당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를 잘 키워주시고 자주 먼 곳까지 와 주시기도 한 좋은 신부님들이 몇몇 경우 미국 사목 생활에서 잘 적응을 못하시고 어려워하시는 모습을 보았다.
한번은 부임하신지 열흘 밖에 안된 신부님이 수요 기도회날 밤 젊은 흑인 권총 강도들의 습격을 받는 일이 생겼다.
미국에 있는 한인 성당은 거의 예외없이 가난한 동네에 위치해 있거나 심지어 우범지대 중심에도 있다. 물론 좋은 교회를 살 재원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좋은 주택가에 동양인들이 교회를 세우는 것을 그 지역 주민들이 반대, 허가가 나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어쨌든 머리에 권총을 들이대며 움직이면 쏜다는 강도 때문에 신부님은 제단에 선채로 나머지 일당들이 신자들의 결혼반지며 핸드백이며 지갑 터는 것을 멍청히 보시기만 했다며 자책하셨고 그 후 며칠 술을 많이 마시고 급기야는 피를 몇 번씩 토하시고 병원에 입원까지 하셨다.
하기사 피를 토하신 신부님이 어디 그분 뿐이랴. 신자들과의 갈등, 또는 오해와 누명으로 피를 토하고 입원하신 신부님을 나는 두 분 더 알고 있다.
어떤 신부님은 교포 사목 중에는 온갖 유혹이 많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사전 정보를 듣고 오셨는지 처음에는 신자들과 거리를 두시고 쌀쌀하게 대하시기도 하셨지만 불법체류자 등 온갖 종류의 신자들에게 개인적 도움을 안 줄 수 없는 교포 사목의 특수성 때문에 종국에는 신부님 스스로가 상처를 많이 받게 되는 경우도 보아왔다.
얼마 전 고국에 몇 달 다녀와서 일년에 절반 정도 밖에 참석하지 못하는 이곳 한인 성당 신부님께 인사도 드릴 겸 저녁식사를 함께 하십사고 전화 드렸더니, 안그래도 혼자 밥끓여 먹기 싫어서 망설였다며 그렇게 반가워 하실 수 없었다. 전화를 한 내가 오히려 가슴이 아려왔다. 알고보니 이 신부님께는 일주일에 한번 파출부가 와서 청소도 하고 음식도 몇끼니 만들어 놓고 가버리는 모양이었다.
미국의 교포사목을 위해 고국의 각 교구에서는 3~4년간 기간으로 신부님을 파견해 주시는데 이것이 해당 신부님의 희망이나 요청으로 결정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대부분 교포 신자들을 위해 미국에 오시는 신부님은 고국에 계신 신부님 들 보다 육체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인 고통도 확실히 더 많이 겪고 계신다고 믿는다. 사전 정보와 예비 지식도 필요하시겠지만 무엇보다 남다를 각오가 필요하실 것이다. 그러면 혹 성직자로서의 성취감도 더 많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교포사목 신부님들 이야말로 부평초 같이 고국을 떠나 길 잃고 의욕 잃은 신자들의 거의 유일한 인생 등대가 되어 주시기 때문이다.
고생 많으신 변경의 신부님들께 이 자리를 빌어서 나마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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