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없는 이성교재, 성의 올바른 의미 왜곡시켜
얼마 전, 모 일간지에서 “신세대 새 사랑법 ‘데이트 메이트’(Datemate)아시나요?”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데이트 메이트’란 이성과의 연애를 뜻하는 ‘데이트’와 친구를 뜻하는 ‘메이트’를 합쳐 놓은 합성어이다. 어느 한 사람에게 얽매이는 부담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로이 이성관계를 즐기겠다는 발상이다.
이들 ‘데이트 메이트’간에는 서로 교제를 시작하기 전에 다음의 몇 가지 원칙에 합의한다: 사랑하지 말 것, 스킨쉽은 키스까지만 할 것, 감정이 식으면 깔끔하게 헤어질 것, 서로의 사생활에 간섭하지 말 것 등. 이러한 합의사항이 의미하는 것은 서로 간에 철저하게 즐기되 구속되지 않겠다는 의도이다.
이 신문과의 개인 인터뷰에서 어느 한 직장인 여성(25세)은 지방에서 근무하는 애인과 평일에는 데이트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혼 상대인 애인과 ‘데이트 메이트’를 따로 두고 있다고 말했다. 더욱이 자신의 데이트 메이트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도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여성이 따로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신세대의 성의식이 필자에게는 너무나 놀라운 것이었다. 그래서 필자의 대학 윤리강의시간에 학생들에게 이 기사 내용을 전했었는데 필자의 예상과는 달리 학생들은 별로 놀라는 기색이 아니어서 다시 한 번 당황함을 금치 못했었다.
존재하는 모든 것 안에는 목적이 있다. 이 목적은 그 존재의 존재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 안에 있는 이 목적(존재이유)을 잘 성취할 때 비로소 가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 안에 존재하는 성의 목적은 무엇인가? 성적 존재인 인간은 자신 안에 주어진 이 성을 어떻게 실현해야 가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인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몸의 신학’을 통해, 인간에 있어서 성의 올바른 실현은 인간 상호 간의 인격적 사랑 나눔을 통하여 성취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창세기의 저자에 의하면, 원조 아담은 세상에 창조된 직후 원초적 고독의 상태에 있었다. 무엇이 그를 고독하게 하였는가? 그 고독은 반대 성에 대한 성적인 그리움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본래 명사 ‘아담’(’adam)은 ‘흙’을 의미하는 것이지 성적인 존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가 고독했던 이유는, 창조된 모든 피조물 중에서 자신과 동질의 인간성을 나눌 수 있는 존재는 세상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담의 고독은 하느님 보시기에도 좋지가 않았다(창세 2, 18). 그래서 하느님은 아담을 잠들게 한 후 그에게 자신을 거들 짝을 만들어주신다. 이때부터 비로소 성적존재로서의 인간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사람은 이제 성이 없는 존재(’adam)로서가 아니라 성적 존재인 남자(’is)와 여자(’issah)로서 존재하게 된다.
그렇다면 인류가 성적 존재인 ‘남자’ 혹은 ‘여자’로서 존재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창조설화가 우리에게 전하는 교훈은 여자가 남자와 물질적 동일성을 향유하는 몸을 소유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질의 인간성을 향유하는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께서는 자신과 동질의 인간성을 나눌 존재를 피조물 안에서 발견하지 못하고 고독해하는 아담에게 동질의 인간성을 나눌 여자를 창조했을 뿐만 아니라 그 여자와 성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아담을 성적존재로 재창조하였다는 사실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성적 존재인 남자와 여자로 구성된 이 인류공동체는 동등한 인격을 지닌 결합체이며, 이 결합은 서로 간의 인격적 사랑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다시 말하면, 남자와 여자 상호 간에 자신을 스스로 내어줄 수 있는 인격적 사랑의 친교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이 공동체가 그 안에 주어진 목적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데이트 메이트’는 ‘사랑하지 말 것’을 전제하고 교제한다. 사랑 없이 쾌락만을 향유하겠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모순적이며 반 복음적인 만남인가? 단순히 ‘사랑 없는’ 즐김만의 이성교재는 성의 올바른 의미를 왜곡시킬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만을 남길 뿐이다.
마음 없는 이성 교제 안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전상진 교수의 말대로, 실리에 익숙한 젊은이들이 ‘사랑’이라는 가치보다는 단순히 만나서 함께 데이트하는 ‘현상’만을 즐기겠다는 위험한 발상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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