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학교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또래친구’
“학교폭력 심각합니까? 심각하지 않습니까?” 어느 신문기자의 질문. 전국적인 교사 단체를 취재했더니, 학교폭력이 별로 심각하지 않은 데도 민간단체들이 떠든다고 주장하더란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모르겠다고요? 관심 없다고요?
며칠 전 부산의 한 중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다른 학생에게 맞아 의식을 잃고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학교폭력이 아니라 학교살인을 걱정해야 할 판이라는 자조마저 나오고 있다. 이런 사망사건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보는 학교폭력은 여전히 심각하지 않다. 1만여 초중고의 400만 명 가까운 재학생 중 한명이 죽은 걸 가지고 웬 호들갑이냐는 식이다. 한동안 유행하던 ‘그까이꺼’식의 반응이다.
지난 4월 말 학교폭력이 발생해서 학생이 사망한 경우에 숨기고 거짓말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경남교육청의 매뉴얼 ‘학생생활지도 길라잡이’가 보도되어 큰 충격을 주었다. “교내에서 이미 숨진 상태라도 후송 중 숨진 것으로 해라.” “학급일지, 교무일지, 생활지도일지 등에 인간존중, 따돌림 예방과 치료교육 상황을 점검하고 기록이 없으면 즉시 보충하여 써넣어라.” 정보기관의 공작을 방불케 하는 치밀성은 분노 이전에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
과연 경남교육청에서만 이것을 만들었을까? 교육부는 그 사실을 몰랐을까? 수많은 질문을 받고 나 또한 의구심이 갔지만, 따질만한 구체적인 증거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 국정감사에서 경남교육청의 매뉴얼이 실은 교장자격 연수교재의 내용을 옮긴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즉, 앞으로 학교장이 되려는 사람들은 교장자격 연수를 받아야 하는데, 그 연수교재에 그 내용이 실려 있다는 것이다.
교재가 작성된 2002년 이후 이 연수를 받은 사람이 몇 명인지 모른다. 하지만 연수를 마친 사람 중 어느 누구도 내용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고발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소름 돋게 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관리자로 버티고 있는 학교에 우리 아이를 맡겨야 하는 현실이 슬프기만 하다. 그런 학교 관리자의 눈에는 학생들이 맞아 죽고 괴롭힘에 못 이겨 자살하는 일도 대수롭지 않게 보일 것이다.
이해찬 총리가 학교폭력을 4대 폭력의 하나로 정하고 범정부 차원에서 근절시키라고 지시해도 학교폭력에 대한 해결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앞장을 서야 할 주무부처인 교육부는 “법률에 근거가 없다” “예산이 없다”며 핑계 대기에 급급하다. 어느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학교폭력의 원조인 ‘이지메’의 나라 일본에서는 학교폭력에 의한 사망사건이나 자살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학교장, 교육장, 교육감은 물론 장관까지도 기자회견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국민들에게 사죄하면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학생이 죽고 자살해도 사죄하는 사람 없고 변명만 난무한다. 목숨을 잃은 학생과 절규하는 부모만 있을 뿐이다. 학교에 다녀오겠다며 인사하고 간 아이가 시체가 되어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것을 바라봐야 하는 부모의 무너지는 마음, 이제 더 이상 흘릴 눈물도 없다면서 어느 새 눈물을 흘리며 호소하는 학교폭력 피해 학부모님들의 찢어지는 가슴을 헤아려 보지 않는다.
그동안 필자는 나름대로 학교폭력 문제해결을 위해 노력을 해왔다. 법률을 기초하여 국회에서 제정되게 하였고, 지금은 학교폭력대책국민협의회라는 시민단체의 공동대표를 맡아 정부의 정책을 감시하고 아울러 협력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런데 시민단체의 노력은 학교라는 높은 벽에 늘 부딪히고 만다. 교육부를 비롯해 교육청, 일선학교는 시민단체를 마치 학교라는 성역에 뛰어드는 침입자로 보기 십상이다. 이 교육당국의 폐쇄성이 문제해결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만약에 그들이 외부에 개방했다면 학교폭력은 지금보다 50퍼센트 이상 해결되었을 것이다.
학생들에게 “제일 무서운 사람은 누구냐?”고 물은 적이 있다. 선생님? 부모님? 아니다. 그들에게 제일 무서운 존재는 또래친구라는 사실이다.
이후 필자는 학생들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이 학교폭력의 진정한 해결책이라고 믿게 되었다. 학생들 스스로가 학교폭력을 자신들의 문제로 받아들여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질 때 학교폭력은 해결된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 교칙에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고 교칙 제정에 학생들을 동참하게 할 필요가 있다.
학교폭력은 성인들의 폭력문화를 보고 배운 아이들의 흉내내기다. 학교폭력은 ‘남의 일’이 아니다. 지역에서 발생하는 학교폭력 문제에 보다 관심을 갖고 조그만 힘을 보태자. 아프고 죽어가는 아이들 모두가 우리의 자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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