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에 보면 무왕불복(無往不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나 간 것은 반듯이 다시 돌아온다는 뜻입니다.
과거는 과거로 영원히 단절된 시간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 재생산된다는 동양의 역사관을 반영한 것이지만 한 개인의 삶 속에서도 과거는 현실의 삶을 옭아매고 현실의 나를 재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제가 된 이후 좀 나아진(?) 모습을 인정받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었습니다. 신학생 때의 수줍고 열등감에 가득 차 있었던 모습이 아니라 조금은 생동감 있고 의젓한 모습으로 친구들이 보아주기를 바랐지만 돌아오는 눈길은 여전히 과거의 잣대로만 바라다보는 눈들을 확인할 뿐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예언자는 고향에서 존경받지 못한다’는 성서 말씀을 떠올려 보기도 했지만 별 위안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한 피정에서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고 싶은 유치함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고상함이 아니라 제 자신이 단 한번도 다른 사람을 인정해 본 적이 없다는 것 말입니다. 정작 인정받고 싶어하면서도 나는 그들을 과거의 잣대 속에 옭아매고 있었고 과거 속에서 그들의 말과 행동을 바라다보고 있었습니다. 정작 과거를 떠나지 못한 것은 그들이 아니라 ‘나’였음을….
과거로부터 변화된 나를 인정받고 싶다면 과거와의 단절이 아니라 너를 바라다보는 내 눈을 먼저 변화시켜야 합니다. 과거는 지나가는 법이 없기에 오늘의 나를 구속하겠지만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은 지울 수 없는 과거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과거 속에서 배우는 것입니다.
나만 인정받고 싶었던 속 좁음을 깨닫고 나의 변화에만 머물며 너의 변화를 인정하지 못했던 어리석은 삶으로부터 회개하게 될 때, 비로소 내 부족했던 과거는 관계의 단절이 아닌 새로운 관계 회복의 출발점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권철호 신부(고속버스터미널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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