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죄한 생명 죽일 수는 없어”
몇 년 전에 개발된 사후 피임약인 ‘노레보’정, 곧 ‘모닝필’은 호르몬을 근거로 한 제조약(에스트로겐, 에스트로겐/프로게스토겐, 또는 프로게스토겐만 함유하기도 함)으로서 성관계로 수정되었다고 생각되는 경우에 72시간 안에 복용하면 뛰어난 ‘반착상’ 기능을 한다. 말하자면, 자궁벽 자체를 떼어 내는 과정을 통해서 포배 상태, 곧 수정 뒤 5일에서 6일이 지난 상태에 이른 수정된 난자, 곧 인간 배아가 자궁벽에 착상되는 것을 막는 것이다.
따라서 사후 피임약은 수정란의 자궁 내막 착상 방지를 통해서 수정된 난자, 곧 인간 배아가 자궁벽에 착상되는 것을 막아서 결국은 인간 배아를 파괴시키는 것이다. 결국 ‘모닝필’이 가지고 있다고 증명된 ‘반착상’ 효과는 사실은 화학적 인공 유산과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이 약은 사후 피임약이라기보다 ‘조기 낙태약’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2000년 10월 31일 교황청 생명 학술원에서 발표한 사후 피임약 “‘모닝필’에 대한 성명서”에서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반착상 효과는 사실은 화학적 인공 유산과 다름없다. 따라서 이 약을 요구하거나 제공하는 사람들은, 낙태의 경우에서처럼 이미 진행되고 있을지도 모르는 임신을 손쉽게 중절하려 하는 것이 분명하다.” 이어서 성명서는 사후 피임약의 사용에 대해서 강경한 어조로 “인간 배아처럼 가장 약하고 스스로 지킬 힘이 없는 존재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교묘한 공격”이라고 비난하면서, “도덕적 양심으로 확고한 반대를 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일반적인 피임 목적의 ‘알약’ 사용은 매일 30㎍의 에스트로겐을 복용하는 것인 반면, 사후 피임(모닝필)의 목적으로 사용될 때는 성관계 후 72시간 안에 100㎍의 에스트로겐을 복용하고 12시간 후 다시 한 번 더 복용하게 된다.
영국 보건 사회 보장부(DHSS)의 ‘피임 시술에 관한 안내서’(1978년)는 “이 방법은 과도한 에스트로겐을 투여하게 되므로 응급 상황에서만 사용되어야 하며 일반적인 피임 목적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못 박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혼인한 부부가 피임에 의존하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남편과 아내 상호간의 완전한 자기 봉헌을 표현하는 본래의 언어가 산아 제한이라는 객관적으로 모순 된 언어, 곧 자신을 상대방에게 완전히 바치는 것을 거부하는 언어로써 덮어씌워진다. 이것은 생명에 대한 개방성을 적극적으로 거부함과 아울러 인간 전체를 바치도록 되어 있는 부부사랑의 내적 진리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회칙 ‘가정 공동체’ 제32항;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목헌장’ 제51항; 회칙 ‘인간생명’ 제12, 14항 참조)
아울러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잉글랜드와 웨일즈 주교회의 생명윤리공동위원회는 사후 피임약 사용과 관련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극소수의 경우, (강간 후) 실제로 임신이 될 수도 있다. 그러면 그 부모나 부모의 세포와는 구별되는, 새로운 인격(을 갖춘) 존재가 생긴다. …
이때부터, 도덕률이 요구하는 것은 가장 본능적인 감정적 반응보다도 더욱 분명하다. 그것은 바로 한 남성이 여성을 강간한 것 때문에 새로 수태된 생명이 죽음의 고통을 당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출생 전 태아의 발달 과정은 그 과정의 지속을 방해할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어떠한 절차나 기술 과정의 간섭을 받아서도 안 된다. 우리가 낙태를 이야기하면서 낙태 의도를 비난하는 것은, 그러한 의도로 사용되는 모든 절차나 기술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 어떠한 기술이나 장치가 수정 이후 그러한 효과를 가져 온다면, 그것은 ‘피임’ 또는 ‘월경 적출’ 등의 다른 이름으로 불리더라도 사실상 낙태제, 낙태 장치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배아의) 발달 과정의 지속을 방해할 목적으로 간섭하는 것과 적극적으로 배아를 죽이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죽을 수도 있다는 가망성이나 위험을 고려하지 않고 행동하여 … (배아를) 제거하려고 간섭하는 것은 배제된다.”(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잉글랜드와 웨일즈 주교회의 생명윤리공동위원회, “강간의 경우 ‘모닝필’의 사용”, 1986.1.31.)
사실 강간으로 인한 임신이나 기형 임신 등 나름대로 고통스러운 현실은 실로 안타깝기만 하다. 그렇지만 낙태가 적극적인 해결책이거나 최선의 방법은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해서, 이미 태어난 사람(임신 당사자)의 어려움이나 인격권 때문에 태어날 태아의 근원적인 생명을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사회 도덕적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임신, 곧 근친상간이나 혼인 전의 임신, 강간에 의한 임신은 엄격히 말해 부모나 당사자의 부주의에 따른 잘못된 결과이기에 그 책임을 무죄한 태아에게 일방적으로 뒤집어씌운다는 것은 생명에 대한 침해이고 모독이며 무책임한 태도이다. 한마디로 어른들의 부주의, 당사자의 실수로 무죄하고 아무런 저항 능력이 없는 태아가 희생되어야 한다는 것은 정당성이 없다.
우리나라의 모자 보건법은 일종의 가족 계획법이고, 그 가족계획 사업의 핵심은 태아 살해 곧 낙태의 정당화 사유를 부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모자 보건법의 낙태 허용과 관련된 모든 규정은 헌법 제10조 ‘인간 존엄과 가치’에 위배되기 때문에 명백한 위헌이며, 합법적 태아 살인법이다.
특히 모자 보건법에는 강간 또는 준 강간에 의한 경우에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이것은 언뜻 보기에는 불행을 당한 사람을 도와주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혜택보다는 남용의 위험이 더 많다.
결론적으로, 강간에 의한 임신의 경우라 할지라도 그 태아는 고유한 생명권을 가지고 있으며, 이 문제는 낙태로 해결될 문제가 결코 아니다. 또한 이러한 문제는 한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사회의 전체적인 문제이기에 우리 사회가 함께 그 짐을 져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의 정책적인 지원과 제도적인 장치가 하루빨리 마련되어야 하며, 우선적으로 예방적 성교육, 성폭력의 방지, 미혼모의 보호 대책, 입양 사업을 사회가 함께 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창영 신부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위원·본지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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