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노동자들을 따뜻하게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사회 만들어야
프랑스 파리 교외에서 소요사태가 발생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달 27일 아프리카계 소년 2명이 경찰의 검문을 피해 달아나다가 감전사하면서, 인종과 종교에 차별을 받아왔다고 생각한 무슬림계 주민들이 소요를 일으켰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잉단속 논란에 대해 내무장관 사르코지는 과잉단속 논란에 대해 “인간쓰레기와 건달들을 청소해 버리겠다”며 강경단속 방침을 밝혔다고 합니다. 자유·평등·박애의 프랑스답지 않은 모습이군요.
프랑스의 소요사태를 보면서 왠지 지난달 TV 뉴스에 방영된 불법체류 노동자의 단속현장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경기도 마석 가구공단의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를 연행하려는 출입국관리소 직원들과 이를 막으려는 이주노동자와 공장주인, 그리고 주민들의 대치. “밥 먹는데 끌어내고 화장실 가는 데 잡아가고…”라며 항의하는 이주노동자의 절규….
도시 외곽의 중소기업 공장 밀집지역에 가면 남서 아시아계 노동자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혹시 ‘불법체류 노동자’라는 단어는 아닙니까?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도 불과 몇 십년 전까지 젊은이를 간호부와 광부, 근로자로 독일과 열사의 중동지역에 보내 번 돈으로 경제를 재건했습니다. 불법체류 노동자들도 자기 나라에서 보면 과거 국가를 위해 일한 일꾼들에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제 먹고 살만해졌다고 해서 그들을 무시하는 것은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르는 격이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잘못된 이중 잣대라고 비난받을 겁니다.
불법체류라는 말을 들으면 엄청난 범죄라도 저질렀다는 느낌이 들 겁니다. 불법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으니까 더더욱 그럴 것입니다. 체류기한을 지나 머물러 있으니 불법임은 분명하지요. 하지만 불법을 저질렀다고 해서 모두 범죄자일까요?
혹시 불법주차로 딱지를 떼인 적 있으세요? 불법주차는 말 그대로 불법으로 주차한 행위입니다. 하지만, 불법주차로 단속을 당한 누구도 자신을 범죄자라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단속하는 사람도 불법주차한 사람을 범죄자로 취급하지 않을 겁니다. 잠시 주차하여 밥 먹고 있는데 불법주차라면서 식당에서 끌어내 연행한다면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불법체류 노동자들이 법을 어긴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들이 저지른 불법이란 체류기한을 넘겨 머무르고 있다는 것뿐입니다. 살인, 폭행, 절도와 같은 범죄가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의 불법을 중소기업의 기업주들은 환영하고 있습니다. 싼 임금과 열악한 근로환경에도 불구하고 한국민 모두 회피하는 3D업종에 종사하고 있지 않습니까?
‘종속과목강문계’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중학교 생물시간에 배웠던 생물분류 방법입니다. 호랑이를‘호랑이 종, 큰고양이 속, 고양이 과, 식육동물 목, 포유동물 강, 척추동물 문, 동물 계’로 분류하는 식입니다. 이 분류법에 의하면 사람, 즉 인종(人種)은 가장 낮은 단계의 분류이므로 더 이상 분류가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을 피부색·국가·종교로 구분하고 차별하는 우를 범합니다.
제 직장이 있는 경기도 용인에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등지에서 온 이주노동자들이 가구공장 등지에서 많이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을 돕기 위해 한국 CLC 부설 이주노동자 인권센터(http://clc.saenae.com)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소수의 직원을 비롯한 자원봉사자 교우들이 컴퓨터와 한글을 가르치고 가족을 돕고 있습니다. 저도 자문교수로 위촉되어 봉사할 기회를 얻었는데, 최근 이주노동자에 대한 법제도에 대해 공부하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취하는 외국인 노동자정책이 일본이 걸어온 정책과 너무나 똑같다는 사실입니다.
아시다시피 일본의 외국인정책은 배울만한 것이 못 됩니다. 우리 교포에 대한 일본의 차별정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 않습니까? 최근에는 일제시대에 강제징용 당한 사람들이 살던 교토의 우토로라는 지역을 강제로 철거하려고 해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 나라의 정책을 왜 자꾸 배워야 합니까?
국민(國民)이라는 단어에는 국가가 키워드가 되지만, 시민이라는 단어에는 국적이 필요 없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을 지역공동체에서 함께 살아가는 시민으로 생각한다면 피부색, 국적, 종교의 차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훗날 고국으로 돌아가 지금 살고 있는 지역사회를 아련한 추억으로 떠올릴 수 있도록, 따뜻하게 받아들이고 존중하는 정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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