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아기공장’으로 착취”
대리모란 자신의 자궁 안에 이식된 배아를 임신하여 키우는 여자를 말한다. 또한 대리모는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의 정자를 자신의 난자와 수정하게 하여 그 배아를 임신하는 여자를 말한다.
대리모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은 분명하다. “대리모는 모성적 사랑의 의무와 부부간의 정절, 그리고 책임 있는 모성으로서의 의무를 객관적으로 다하지 못한 것이 된다. 이러한 행위는 아이들의 권리와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이며 동시에 가정에도 피해를 주어 가족의 구성단위인 육체적, 정신적, 도덕적 요소의 분열을 초래한다.”(가정공동체, 제28항)
대리모라는 개념은 여성의 자궁을 빌린다는 것을 구실로 삼기는 하지만 결국 자녀의 매매를 합법화함으로써 법적으로 그릇될 뿐 아니라, 남편과 아내의 생물학적 정신적 일치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를 침해하기 때문에 도덕적으로도 그르다는 것이 가톨릭의 입장이다. 대리모라는 개념이 법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는 가톨릭 교회의 주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녀를 상품으로서 또한 여성을 ‘아기 공장’으로 착취하기 때문이다. 대리모 개념은 전자에 대해서는 불의를 증대시키며, 후자에 대해서는 사회적 책임을 철저히 무시한다.
대리모의 윤리적 문제는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로 지적될 수 있다.
첫째는, 자녀의 출생을 상업적 거래 수준으로 격하시킨다는 점이다. 자녀는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자녀는 결코 소유물이나 상업적 이용물, 또는 사례금을 지불하고 받을 수 있는 서비스로서 생산되는 상품으로 다루어질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대리모 관행은 자녀의 인간 존엄에 대한 모욕일 수밖에 없다. 여성의 자궁이 자녀를 사랑으로 태어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녀를 생산하기 위하여 임대되는 것이다. 아기를 낳은 어머니가 금전적 보상을 받고 자식을 넘겨준다면 그 어머니는 자신이 만들 수 있는 가장 귀중한 존재인 자기 자식을 부당하게 이용하는 것이다.
둘째는, 여성을 단지 ‘인간을 만드는 기계’, 곧 ‘출산의 도구’로 취급한다는 점이다. 금전적 이득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사용하도록 허락한 대리모에게 남는 것은 돈과 끊어진 유대 그리고 조각난 꿈뿐이다. 대리모 제도가 가난한 여성들에게 자기 자신과 가족들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사용하도록 부당한 압력을 줄 가능성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셋째는, 자녀의 권리를 직접적으로 침해하며, 가족의 형태를 파괴시키고 여러 가지 도덕적 문제를 야기 시킨다는 점이다. 모든 자녀는 참된 부모를 가질 권리가 있다. 그러나 대리모 제도는 또 다른 어머니를 개입시킴으로써 이러한 관계를 혼란시킨다. 대리모 제도에서는 자신이 직접 그 창조 과정에 참여하여 낳은 자식에 대한 여성의 자연스러운 모성애가 부정된다. 이는 부모와 자식간의 유대를 파괴하며 자녀에게 심각한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다.
우리나라만큼 가계의 혈통을 중요시 여기는 나라도 드물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혈통을 이어가기 위해 며느리가 어떤 이유에서든 아이를 가지지 못할 경우 이른바 ‘씨받이’를 통해서라도 혈통을 이어가게 했다. 물론 가계의 혈통을 중요시 여기는 것이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러한 집착이 모든 수단과 방법을 정당화 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오늘날에 와서는 이러한 ‘씨받이’의 형태가 새로운 형태 곧, ‘대리모’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가계의 혈통만을 고집한 나머지 돈을 주고 일종의 계약으로 성립된 ‘대리모’를 통해 아이를 얻고자 한다면 이는 단순히 고용주와 고용자와의 관계에 불과하다. 이는 인륜적으로나 윤리적으로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무엇보다도 이런 문제에 있어서 보다 큰 문제는 ‘대리모 자신이 자신을 단순히 고용된 육아기(Incubator)로 볼 것인가?’ 아니면 ‘대리모를 고용한 사람들에 의해 그렇게 보여 지는가?’하는 문제다. 이런 경우에 대리모 자신의 감정조절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곧, 대리모 자신은 자신을 ‘어머니’로 보는 것,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의 아기를 일시적으로 보관하는 ‘보관소’ 이상의 의미로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저항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냉정한 감정 조절 없이는 출산 후 아기를 유전적 부모에게 내어주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아가 유전적인 부모들 편에서는 대리인 곧 ‘대리모’에 대한 비인격적이고 사무적인 태도가 성공적인 대리모 협정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게 된다. 결국 유전적인 부모 입장에서는 오로지 두 가지 선택이 가능하다. 첫째, 대리모를 단순히 그들 아기를 갖기 위한 출산 목적의 도구로 취급하는 것. 둘째, 보다 확장된 새로운 가족형태 곧, 세 명의 부모로써 이루어지는 새로운 가족형태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대개 유전적인 부모 입장에서는 전자를 선택하게 된다. 결국 ‘대리모’는 아기를 가지고 낳기는 하지만 끝내 비인격체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요즈음 일본 사람들이 한국에 ‘대리모’를 구하기 위해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왜냐하면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혈통을 중요시 여기는데 다 일본에서는 ‘대리모’가 법적으로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이와 관련된 법안이 제정되지 않아 돈만 있으면 마음대로 ‘대리모’를 구할 수가 있다. 브로커들에 의하면 적게는 몇 천 만원에서 많게는 몇 억 원 정도라고 한다. 사실 여자 대학교 앞에서는 이런 광고문들이 버젓이 여학생 사이에 나돌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이러한 것에 대해 법적으로 처벌 할 수 있는 기준과 근거가 없다. 정부 관련부처에서도 잘 모르고 있고 아무런 대책도 없다. 참으로 한심하고 가슴 아픈 일이다. 왠지 과거 종군위안부로 희생당한 우리나라 여성들의 모습이 자꾸만 떠오른다.
끝으로 또 한 가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할 것이 있다. 대리모가 난자를 제공한 여자의 어머니이거나 여동생이라면, 혹은 가까운 인척관계에 놓여 있는 사람이라면 법적, 윤리적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복잡하다. 서로 간에 상상치 못할 수많은 상처를 주고받을 것이다. 이런 경우 과연 누가 진짜 어머니인가?
이창영 신부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위원·본지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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