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와 사랑을 갖고 삶의 무게로 힘겨운 이웃에 관심 가져야
요즘 우리사회에서는 생활고, 카드 빚, 취업난, 성적비관 등으로 인한 자살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한국의 2004년 자살자수는 11,523명이며, 이는 인구 10만명 당 25.2명으로써 OECD국가 중 가장 높은 수치라고 한다. 문제는 한국의 자살자수가 지난 10년간 계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에밀 뒤르껭은 사회과학적인 측면에서 자살을 자기본위적 자살, 이타적 자살 그리고 아노미적 자살로 구분한다. 자기본위적 자살은 개인의 개성이 집합체의 개성보다 두드러지게 강하게 작용하면서 개인이 사회 안에 적응하지 못하고 고립되어 일어나는 것인 반면, 이타적 자살은 개인이 집단 속에 지나치게 매몰되면서 집단의 목적이나 정체성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발생한다. 특정 종교단체의 이단적 종교 신념에 의한 집단적 자살을 예로 들 수 있다. 그에 반해 아노미적 자살은 개인의 사회적 위치가 갑자기 변화하며 자신이 이에 대처할 수 없을 때 일어나는 자살로서 부모나 사랑하는 이의 갑작스런 죽음을 감당하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우리 사회 안에서는 이러한 자살의 유형들이 복잡하게 혼재되어 있다. 예를 들어보면, 중, 고등학생들이 친구들의 심한 ‘왕따’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가 하면, 카드 빚을 감당하지 못한 한 부인이 세 명의 자녀를 고층아파트에서 떨어뜨려 죽게 한 후 자신도 투신자살한 사건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대입수능시험을 치르던 여고생이 시험결과에 낙심하여 근처 고층아파트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기도 하였고, 기업인이나 고위공무원들이 자신들의 비리에 대한 경찰조사를 두려워하여 한강에 투신한 사건도 있었다. 이러한 자살의 원인을 분석해보면, 신분이나 직업에 관계없이 스스로 해결책을 모색할 수 없는 사회적 갈등의 짐이 개인에게 주어졌을 때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탈출구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자살은 그 행위 자체로서 본질적인 악이며 항상 정당화될 수 없는 행위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자살문제를 단순히 당위적으로만 접근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자살문제는 개인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든 사회적 상황과 결코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 산업기술과 문화의 급속한 발전은 인간에게 많은 물질적 편의성을 제공하였지만 그 그늘에서 인간의 정신세계는 메말라가고 있다. 에릭 프롬이 말하는 것처럼, 현대 인간은 ‘자동인형’처럼 외형적으로는 잘 입혀지고 잘 먹여지지만 그 밑바닥에서 인간성은 말살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대 인간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고독한 영혼들이 서로를 나눌 수 있는 대화의 장이다. 정신적으로 메마른 영혼들이 자신의 고통스러운 내면세계를 드러내고 도움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현대 사회가 너무 바쁘게 돌아가다가 보니 가정 안에서 조차 서로를 나눌 수 있는 시공간적 여유가 없는 현실이다.
아울러 ‘인간존엄과 가치’에 대한 교육이 요구된다. 인간은 이미 아는 존재가 아니라 알아가는 존재이기에 교육은 중요하다. 더욱이 인간존엄과 가치 인식은 생득적으로 얻어지기 보다는 교육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기에 가정, 사회 교육이 절실하다.
인간이 인격적 존재라는 것은 인간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신앙적으로는 하느님과 관계를 맺고 있고, 사회적으로는 가족, 이웃과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러한 인격적 관계 안에서 개인의 고통은 단순히 자신 만의 것이 아니라 가족과 이웃의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고통을 가족, 이웃에게 개방하고 나눔으로서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다. 인간의 인격성은 이러한 개방성과 나눔을 전재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 이웃의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삶의 무게에 힘겨워하는 이들에 대한 지속적인 사랑과 배려가 요구된다. 심리학자 프로이드에 의하면, 인간은 무의식 안에 생의 본능과 함께 죽음본능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죽음본능은 평소에는 에로스의 강한 작용에 의해 드러나지 않다가 에로스의 작용이 약화되는 순간 드러나게 된다. 결국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보이고 있는 대부분의 자살이 사회적 갈등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고 그 도피수단으로 자살을 택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가족, 친구, 이웃의 관심과 사랑은 자살 방지를 위한 필연적 요소라 하겠다. 특히 한 번 자살을 기도했던 사람은 스스로 가족과 사회를 배신했다는 죄의식을 가지기 쉽다. 인내와 사랑을 통한 대화로써 이들 안에 남아있는 자살 기도의 원인을 파악하여 해결해 주어야 하며 재발 방지를 위한 사회적 관심과 배려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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