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시절, 각종 공연을 닥치는 대로 쫓아다니며 인생의 진로와 고난 등은 생각 해 볼 겨를도 없이 연극에 참여하다 어느날 갑자기 배우가 되어 있는 나를 발견하고 놀랐다.
중고등학교 때 본당 학생회 활동으로 기초 지식도 없이 자작 성극의 희곡과 주연, 연출을 맡아 한 계기로 배우가 되었으니 모든 건 하느님 탓이라고, 수입이 없어 고생하는 것도 식구들의 원망도 모두 다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그럴 듯한 자기 방어요 도피인가?
그런데 어느날부터인가 연습이나 공연에 슬슬 꾀를 부리고 늦게 참여하는 일이 종종 생기곤 했다. 나의 앞날을 기대하던 선배들로부터도 자연스럽게 성공하기는 틀린 배우라는 지청구를 듣고 연습에 임하는 불성실한 태도 탓에 기피 대상으로 낙인찍히기 직전의 상황까지 갔다.
그렇게 방황한지 한두해가 지났을까. 한 공연의 초연 날, 오랜 연습을 끝내고 맞은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시큰둥한 기분으로 무대로 나가려는데 마침 무대 한쪽 구석에서 기도를 드리고 계시는 한 선배님의 모습을 발견하고 놀라움과 충격을 받았다.
어쩌다 배우가 되어 뚜렷한 직업의식도 없던 차에 마주하게 된 선배님의 성스러운 자태. 그날만이 아니라 매회 공연 때마다 무대에 오르기 직전에 기도를 바치시는 모습은 마음 깊이 각인됐다.
그 순간 나는 가슴을 쳤다.
‘내탓이오 내탓. 내 교만한 탓.’
하느님이 주신 달란트와 베풀어 주신 활동 무대를 감사할 줄 모르는 내가 과연 배우였을까?
후배 연기자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을 갖고 활동할 수 있도록 커다란 유훈을 남겨 주신 고 변기종 선생님, 후배 배우들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박경득 (사도요한.천주교 문화예술인회 회장)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