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면 생각나는 한 소녀가 있다. 2년전 이때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8살 김혜림 아녜스. 그 아이는 내곁을 떠났지만 아직도 내 마음에는 그 아이의 체취가 남아 있다.
이제는 하늘 나라에서 천상행복을 누리고 있을 아녜스. 그 아이와의 인연은 내가 4년전 한 고아원 복지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맺어졌었다.
처음 그 아이를 봤을 때 유난히 눈에 띄는 맑은 눈망울에 환한 미소를 지었던 해맑은 아이였다. 다른 아이와는 달리 유난히 내가 가면 나를 따르며 반겨주었다.
나또한 친딸처럼 따르는 아녜스가 너무나 이뻤기에 무척 아끼고 사랑해주었다. 일찍이 부모에게서 버려져 누구보다 부모의 사랑이 그리울 아녜스였기에 나를 따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틈만 나면 찾아가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녜스가 있는 복지시설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고 난 큰 충격과 슬픔에 휩싸이고 말았다. 평소 얼굴이 창백해 조금 건강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던 아녜스가 갑자기 호흡곤란을 일으켜 병원에 갔더니 백혈병이란 진단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것도 상태가 너무 안좋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그처럼 내게 큰 기쁨과 사랑을 안겨주었던 아녜스가 이런 무시무시한 병에 걸리다니 믿을 수 없었다. 그때부터 아녜스는 8살 소녀로서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병마와 싸워야 했다.
나는 열심히 병원을 찾아 기도하고 간호하며 아녜스의 눈물겨운 투병생활을 지켜보았다. 하느님을 원망도 했다. 태어나면서 부모에게 버림받고 이제 나를 만나 조금은 부모의 사랑을 느끼는 아녜스에게 이처럼 가혹한 고통을 주시는 하느님이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하길 6개월, 발견당시 이미 시기를 많이 놓친 상황이었던터라 아녜스는 끝내 8살의 짧은 생애를 마감하고 말았다.
아녜스가 죽기 며칠전 힘겹게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아줌마, 너무나 고마워요. 아줌마를 보면 얼굴은 모르지만 엄마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아줌마가 더욱 좋았어요.”
그러면서 아녜스는 “하늘나라는 참으로 좋은 곳이라는데 어떤 곳인지 궁금해요. 하느님께서는 나를 반겨주시겠지요.”
난 눈물이 나서 참을 수 없었다. 난 아녜스에게 “아녜스야, 그런 소리 말고 빨리 나아라. 이 아줌마가 너를 친엄마처럼 돌봐주는데 나아야지.”
마치 자신의 죽음을 미리 예언이나 했다는 듯이 그런 말을 한지 이틀 후 아녜스는 내곁을 떠났다.
아직도 아녜스의 까르르 웃음짓던 해맑은 미소가 내 가슴에 깊이 남아 있다. 비록 짧은 생애였지만 이렇게 만나 서로가 행복했기에 그리고 이젠 하느님께서 우리 아녜스를 잘 돌봐주신다고 믿기에 마음이 한결 가볍다.
그리고 매일 기도중 아녜스를 생각하며 하느님께 간구한다.
“하느님, 우리 아녜스가 당신곁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도록 이끌어주소서.”
이연희(수산나.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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