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관련 연구에 윤리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와 관련된 뉴스로 TV와 신문의 뉴스가 요란합니다. 황우석 교수가 연구과정에서 불법적인 난자를 사용했다며 제기한 미국 새튼 교수의 결별선언으로 시작된 논란은, 급기야 의혹을 취재 보도한 MBC ‘PD수첩’을 네티즌들이 공격하면서 절정에 달하고 있습니다. 광고주들이 광고를 취소하고 심지어는 제작한 프로듀서의 가족사진까지 인터넷에 돌아다닌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태를 보면서 우리 사회의 저변에 깔려있는 편협한 국가주의, 효율과 경쟁만을 강조하는 성과제일주의를 발견하고는 씁쓸한 느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노벨상 감의 세계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왜 방해하느냐 하는 거지요. 그리고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배려하지 않는 무관용과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 뭇매를 때리는 왜곡된 폭력성을 발견합니다.
편협한 국가주의는 야만을 낳기 쉽습니다. 과거 일본에서는 조선정벌에 반대하고 대동아전쟁의 참전을 거부하며 양심선언을 한 사람들을 ‘비국민(非國民)’이라 부르며 탄압하고 옥에 가두고 또 죽였습니다. 독일의 나치즘도 왜곡된 국가주의와 야만의 표본이 아닙니까? 나치즘도 겉으로는 능력 있고 순수한 독일국민과 문화수준 높은 독일을 창조하겠다는 이념을 내세웠습니다. 그래서 머리가 좋고 키가 크며 체격과 얼굴도 잘 생긴 사람끼리 결혼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야만성이었습니다. 못생기고 머리 나쁜 사람은 자식을 낳지 못하게 하였고, 혈통유지에 방해되는 유대인을 수없이 학살했습니다.
효율과 경쟁을 중시하는 성과제일주의는 수단과 방법을 불문하기 쉽습니다. 효율과 경쟁은 국가경제와 기업경영의 양대 바퀴로, 이 두 원리가 우리 국가경제와 기업경영의 발전을 이룩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단기간에 10대 경제국이 되고 세계 유수의 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그야말로 효율과 경쟁을 우선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업적과 성과를 올리기 위해 반인간적이고 반사회적인 행동과 활동을 감행하기도 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이젠 효율과 경쟁의 성과제일주의에서 벗어날 때입니다. 효율과 경쟁이 양대 바퀴이지만, 지금은 수레처럼 두 바퀴로 가는 시대가 아니라 자동차처럼 네 바퀴로 가야하는 시대입니다. 그 새로운 두 바퀴가 인간성과 사회성의 원리라는 윤리입니다.
인간성원리는 인간 존중의 사상에 기초한 휴머니즘입니다. 인권을 존중하고 인류복지에 공헌하는 원리입니다. 그리고 사회성 원리는 사회와의 관계에서 준수해야 할 공정성입니다. 기업이 공정거래법에 반하는 행위를 배척하고 사회적 룰을 중시해야 하는 것은 그 예입니다.
이번 황우석 교수의 연구과정에 대한 논란을 보면서, 윤리의식에 둔감한 우리의 현주소를 확인했습니다. 윤리의 중요성에 대한 글로벌 스탠더드와의 차이를 인식했습니다. 법률과 윤리를 구별하는 의견도 있더군요. 법률에 위반하면 처벌이 따르지만 윤리는 그 같은 강제력이 없는 도덕적 규범이니까 괜찮다는 뜻이겠지요. 분명 법률과 윤리는 다른 차원의 규범입니다.
하지만 “법률은 최소한의 윤리”라는 말이 있습니다. 법률을 준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거기에다 윤리적 행동까지 요구된다는 뜻입니다. 법률에 위반되지 않으면 무엇이든 상관없다는 방법은 이미 국제적으로는 허용되지 않는 구시대적이고 편협한 사고방식입니다.
경영윤리가 크게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익의 추구라는 경영의 목적에 윤리라는 도덕적 기준을 부가하는 것은 언뜻 모순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면서 기업경영에 윤리적인 관점을 도입하는 것이 결코 모순이 아니라는 것을 세계는 인식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오히려 경영윤리를 적극적으로 도입시키자는 분위기가 있을 정도입니다.
유명한 전자 메이커인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사(TI)는 예전부터 윤리를 강조해 온 기업으로 유명합니다. 이 회사의 경영윤리 기준의 모두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기대한 만큼의 수익을 올리는 것과 윤리적으로 올바른 행위를 하는 것 중에 어느 쪽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물론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올바른 행위를 선택합니다.”
인권이냐 개발이냐? 경제성장이냐 환경보존이냐? 우리 사회에는 하나의 가치관만을 정답이라 할 수 없는, 다양한 가치관이 상호 충돌하는 문제가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고 배려하면서 그에 상응한 윤리기준을 모색하는 작업이 요구됩니다. 돈을 버는 경영에도 최소한의 기준으로 윤리가 요구되는데, 하물며 생명과 관련된 연구에 윤리를 요구하는 것이 무리인가요?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