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명의 배우들과 지방으로 공연을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오늘은 충청도 내일은 전라도, 관객이 많이 들어야 쥐꼬리 만한 출연료라도 받고 숙식 정도만을 해결할 수 있는 유랑 극단이었다.
그때는 출연도 하고 극단의 단장 대신 재정도 관리하는 총무이자 무대 감독까지 1인 3역의 중책을 맡았던 터라 극단의 안녕과 무사고를 위해 공연지에 도착하면 먼저 성당을 찾아 기도하고 짐 꾸러미 속에 지니고 다니는 ‘최후의 만찬’ 성상을 머리 맡에 꺼내두고 아침 저녁으로 기도를 하곤 했다.
젊은 단원들이 많아 몇몇은 저녁 공연이 끝나면 시장 바닥을 훑으며 유흥장이나 술집으로 돌아다니고 또 공연 중 점찍어 둔 여자들을 유혹하여 외박나갔다 돌아오는 것을 멋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후에 목사가 된 후배가 있었는데 주인공을 맡는 덕분에 그 주위에는 항상 여자들이 따랐고 숙소에 돌아올 때는 술에 취해 시끌벅적하기 마련이었다. 따라서 기도하고 있는 나와 마주치는 일이 종종 있었다.
“어이구 예수쟁이, 또 기도야? 이러니 흥행이 돼? 이 청승 맞은 꼴 좀 봐. 연극 때려 치우고 절에나 가!”
극단이 해산될 무렵 TV 방송이 개국되자 그는 재빨리 탤런트로 변신하여 오랜동안 인기를 얻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목사가 되었다며 브라운관에서 사라졌다.
미련하게 연극만 고수하던 나는 실화극장이라는 드라마에 김일성역으로 뒤늦게 등장했다. 그리고 몇년 후, 동료 모친의 문상 때 그를 만나게 됐다.
“어이구 박형 오랜만이요.… 무신론자인 나를 예수님 앞에 끌고 가 무릎꿇게 한건 기도 하던 형의 그림자였소.”
박경득 (사도요한·천주교 문화예술교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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