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제도, 국민의 본질적 권리인 생명권 빼앗는 가혹행위
2005년 12월 2일 새벽 2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당국은 전처 등을 살해한 혐의로 케네스 리 보이드(57)에 대하여 독극물 주사를 통한 사형을 집행하였고 발표하였다. 이는 1976년 미국에서 사형제가 부활된 이후 1000번째 사형집행이란다. 보이드의 변호사에 의하면, 그는 마지막 식사로 스테이크, 구운 감자, 셀러드 등을 먹은 후 가족 상봉을 마치고 비교적 안정된 마음을 유지하였지만 자신이 1000번째 사형수라는 통계에 부담을 가지면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고 한다. 대림시기에, 세상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는 이 시기에 이루어진 사형집행이기에 필자의 마음은 착찹했다.
사형(死刑)이란 글자 그대로 인간 존재의 바탕인 생명을 빼앗아 그 사람의 사회적 존재를 말살하는 형벌이며, 모든 형벌 중에서 가장 무서운 형벌이란 점에서 극형이다. 이러한 사형제도는 이미 구약시대 때부터 존재하는 것으로서 어느 누구도 쉽게 찬성 혹은 반대를 논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사형제를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속죄할 수 있도록 책임을 물어야 하며, 이는 날로 잔악해지는 범죄로부터 사회구성원을 보호하기 위한 필요악이라고 본다. 반면, 사형제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인간은 제한된 존재로서 누구나 다 잘못을 저지를 수 있으며, 그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그에게 참회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과 국가가 그 구성원의 기본권 중에 기본권인 생명을 거두는 것은 법정신에도 어긋나는 것으로 본다.
처참한 범죄 장면을 목격한 사람은 사형존치론자가 되고, 처연한 사형장면을 목격한 사람은 사형폐지론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필자가 영국 런던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어느 날, 밤늦게 윔블던에서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전철을 탓다가 흑인 청소년들에게 에워 쌓여 돈을 강탈당했던 적이 있다. 필자의 인생 경험 안에서 강도를 당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그 충격으로 인해 한동안 밤거리가 무서웠고, 흑인들에 대한 알 수 없는 분노가 마음 안에 자리 잡으면서 강한 사형제옹호론자가 되었다. 시민들의 행복권을 보호하기 위해 극악한 범죄자를 사회에서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데드맨 워킹’(Dead Man Walking)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필자는 마음을 바꾸게 되었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 할 수 있으며, 그러한 범죄자가 회개하고 사회로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형제에 대한 찬반론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인간존엄과 가치’에 대한 이념이 서로 다른 것 같다. 사형제옹호론자들은 인간존엄의 근거를 자유에 두고 있으며, 자신의 자유 행사를 통하여 범죄를 저질렀다면 그런 사람은 이미 인간존엄을 상실한 것으로 본다. 그에 반해 사형제반대론자들은 인간존엄의 근거를 생명 자체에서 찾는다. 생명은 하느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며 이 생명을 통하여 인간은 하느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국가가 비록 국민의 기본권을 법으로 제한할 수 있지만,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은 침해할 수 없다. 따라서 국가가 국민의 가장 본질적인 권리인 생명권을 빼앗는 것은 너무 가혹한 행위라고 본다.
이러한 인간존엄에 대한 서로 다른 견해가 응보에 대한 서로 다른 이념으로 확장된다. 응보란 ‘선악의 행위에 따라 받게 되는 갚음’이라 정의할 수 있다. 사형제 옹호자들은 응보를 책임응보로 이해한다. 이는 불법행위에 대하여 그 책임을 묻는 것으로서, 국가가 질서유지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서 사형제를 유지하는 것은 적법하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사형제반대론자들은 응보를 목적적 응보로 이해한다. 형벌제도의 목적은 범죄의 일반예방과 범죄인의 개선에 있다. 부모가 자식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엄하게 교육하듯이, 형벌제도는 사회의 구성원에게 응보를 가함으로서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뉘우치고 다시 사회로 복귀하여 사회가 제공하는 행복권을 누릴 뿐만 아니라 사회의 공동선에 기여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사형제는 이러한 범죄인의 개선의 기회를 통째로 박탈하는 행위이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사형제폐지를 주장하며, 그 대안으로 감형 없는 절대적 종신제를 제시한다. 절대적 종신제가 가지는 효과는 (1) 극악한 범죄자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킴으로서 ‘국민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 (2) 범죄인에게 개선(회심)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3) 국가가 그 구성원의 생명을 박탈하였다는 비난을 해소할 수 있다.
국회에는 현재 여야 의원 175명이 서명한 사형제도 폐지 법안이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이 해가 다가기 전에 잘 처리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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