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교육의 다양성·질적 변화 통제
“사학 생명인 건학이념 무시한 처사”
사학법 개정안을 둘러싼 작금의 사태에서 우리 가톨릭이 어느 당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처럼 보이고, 학교의 투명성을 거부하며, 학교 재산권 행사나 경영권 방어를 위해 학생들을 볼모로 투쟁하는 것처럼 여론에 비춰지고 있다. 사실 그런가? 우리교회는 왜 사학법 개정을 반대하는가? 직접 학교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한 사제로서의 변이다.
사학의 존재 이유는 다문화 사회 안에서 학교교육의 다양화와 특성화를 통하여 피교육자의 고유한 자질과 특성을 살리고 이를 통하여 각자의 욕구를 충족시킴으로써 궁극적으로는 다양한 삶의 가치를 완성시키는 데 있다. 이러한 교육을 제대로 시킬 수 있는 곳이 바로 사학이며, 그 바탕은 사학의 건학이념이다. 말하자면 건학이념은 사학의 생명이다. 사학이 살아나려면 당연히 건학이념을 스스로 구현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한 객관적 요소도 갖추어야 한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사학법 개정이 이러한 필수 불가결한 사학의 존재이유를 충실히 존중하고 성장시킬 수 있는가?
일반적으로 제도의 변화를 강요할 때, 혹은 변화하고자 할 때는 그에 상응하는 충분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금번 사학법 개정의 이유로 들고 있는 민주성, 투명성, 공공성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현재의 사학이 민주적이지도 않고 투명하지도 않으며 공공적이지도 않아야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사학이 추구하는 고유한 가치인 자주성과 독립성, 그리고 다양성을 동시에 유지해야 한다.
금번 사학법 개정의 핵심사항은 개 방형 이사제 도입, 학교 예산 결산 심사 강화, 학사업무의 이사회 관여 배제, 내부 감사 기능 강화, 이사장의 학교장 겸임 금지, 대학평의원회 설치 의무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항들은 다음과 같은 위험성 내지는 우려들을 내포하고 있기에 이를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개방형 이사제 도입은 고유한 목적이나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보는 가치를 지향하는 사람이나 단체가 재산을 기부하여 만든 재단법인과 그 재단법인의 성격을 규정하는 이사회의 구성원을 전혀 다른 외부 인사를 참여시킴으로서 사학의 존재이유인 자주성과 고유성을 해칠 우려가 있고, 지향하는 가치의 왜곡을 가져올 개연성이 있으며 내부 갈등을 조장하고 심화할 수 있다.
둘째, 예산 결산의 심의 과정에서의 교사, 교수, 학부모들이 참여함으로써 재단 이사회의 안목과 이들의 뜻이 대치될 때, 재단의 고유한 자율성이 크게 위축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사학재단의 투명성을 거부하자는 것이 아니고, 예산이 장기적 패러다임에 의해 사용되지 못하고 그들의 단기적, 자기중심적 이익에 집착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학교운영위원회나 대학평의원회 의원들의 임기가 단기적이고 학교 전반에 대한 지식이나 애정이 일시적일 수 밖에 없지 않는가. 그동안 ‘비리재단’에서 일어난 재산 문제가 일부에서 있었음이 사실이다. 그리고 바로 이점이 사학법 개정의 주요 원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리가 모든 사학재단의 문제인 것처럼 매도하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 이미 주교님들이 지적하신대로 비리재단에 대한 통제와 감시가 현행 법률들에 의해 충분히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법을 개정하는 저의는 무엇인가?
셋째, 사립학교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기 위해 제정한 법률(1963. 6. 26, 법률 제1362호)에 보면, 학교법인 설립의 의미는 사유재산을 투자하고 그 투자한 대가로 학교의 경영을 국가로부터 위탁받는 것이다. 위탁이란 사학재단의 자율성의 존중뿐 아니라 교육부로부터의 지도 감독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사학법 개정을 스스로 운운하는 것은 교육부가 그동안의 지도 감독을 소홀히 했음을 자인하는 셈이다.
넷째, 국공립의 학생이든 사립학교의 학생이든 모두 같은 국민이며 국민 모두가 누려야할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 그런데 마치 현재 사립학교에 지원되는 국가지원금이 지원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특별히 지원해주는 것처럼 생각하고, 이 지원금이 사학재단의 이익으로 변용되는 것처럼 여론을 조성하면서 관리감독을 강화해야한다고 하는 논조가 문제이다. 실제 국고지원은 대부분 교직원 인건비로 사용되는 상황이고 그 투명성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섯째, 우리나라 역사 안에서 사학의 공헌도는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다.
그러나 현재의 사학법 개정은 교육의 다양성을 축소하고 획일화의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다양한 교육의 수요에 맞춰 새로운 공급을 할 주체를 제한할 우려가 있어 교육의 소비자는 앞으로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
그간 교육의 틀이 국가에 의해 통제되고 제한되어 정부라는 공급자에 의해 공급자 우선 중심으로 교육이 진행되어 왔으나, 교육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이 필요한 시기, 즉 각각의 학교가 더 좋은 질과 방향과 속도를 가지고 교육에 임하도록 자율성을 더 부여해도 부족한 시기에 획일적이고 통제적인 시스템을 적용하는 것은 교육의 다양성과 질적 변화를 제한한다고 할 수 있다.
위와 같이 금번 사학법 개정은 민주, 투명, 공공이라는 겉옷을 입고 모든 사학이 의사결정과 운영절차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음에 이의를 제기하며 그 문제점들을 나름대로 지적해 보았다. 천주교 재단의 공공교육을 통한 복음화 노력과 역사적 공헌을 무시하고 교육 공급의 다양성과 교육 수요자의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금번 사학법 개정이야 말로 더 비민주적이며 공공성이 부족하다할 수 있다.
우리 가톨릭이 학교를 설립 운영하는 것은 물질을 사회에 기부 한 것이 아니라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근본이 되는 인간을 길러내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국가는 국고지원과 학교의 공공성만을 내세워 물질로 교육 현장을 해석하고 있고 그간의 순수함을 왜곡하고 있으니 여기에 어찌 찬성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사학의 문제’보다 더 큰 ‘교육정책의 전반적인 변화’가 급선무가 아니겠는가.
이상돈 신부(효명중고등학교 교목실장)
기사입력일 : 2005-12-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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