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주의적 동기·자율적 결정 중요”
우리나라에서의 장기이식 수술은 1960년대 후반 처음 시작되어 점차 증가하여 최근에는 연간 1500여 명 이상이 다른 사람에게 장기를 이식받고 있다. 앞으로도 장기이식 수술을 희망하는 사람은 점차 많아질 것이다. 이제 장기이식 수술은 더 이상 특수한 어떤 시험적인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치료의 개념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고 하겠다. 장기이식 수술 방법 또한 날로 발전하여 거의 모든 장기와 조직의 이식이 성공하고 있어 불치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생명을 구제받게 되는 커다란 희망이 되고 있다.
그러나 수술을 희망하는 사람은 많은 반면 공여자가 적기 때문에 기다리다가 사망하는 사람의 수도 적지 않다. 비공식 집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병원마다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장기이식 수술은 대기하고 있는 사람의 십분의 일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1996년 장기이식 수술을 원하여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5만 47명이었으나 1996년 1월부터 12월 사이에 장기이식 수술을 받은 사람은 1만 9410명에 불과하였다. 간이나 심장을 이식 받으려고 기다리다가 사망하는 사람은 30% 정도이다. 따라서 병원이나 장기이식 담당 기관에서는 더 많은 장기를 확보하기 위하여 다양한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수요는 많고 공급은 적고
예를 들어 장기 공여 카드(donor card)만 있으면 가족의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장기를 적출하는 안(案), 생전에 장기 공여에 동의한 카드나 증빙 서류가 없어도 당사자가 장기 공여에 반대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없다면 추정 동의만으로도 뇌사 상태에서 장기를 적출하는 안(案), 또는 생체 이식의 범위를 확대하여 가족 이외의 사람도 장기를 공여할 수 있게 하거나 신장 외에 간이나 폐도 생체 이식을 시도하는 안(案) 등 장기를 가능한 많이 확보하려는 여러 가지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 존중의 차원에서 장기 공여는 어디까지나 이타주의적 동기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당사자의 자율적인 결정에 근거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장기 확보를 위한 상기와 같은 전략들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모든 장기이식 수술은 자유로이 수여를 결정하는 공여자와 사랑의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수령자 모두에게 선(善)의 견지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때 의사는 그가 부딪히게 될 위험, 곧 수술 중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위험과 수술 후의 모든 부작용의 가능성에 대해 알려 줄 의무가 있으며, 현명한 결정을 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장기이식을 위한 중요한 기준은 인간 자유의 진전과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존경을 지닌 외과 의사의 가능한 결론에 관계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 생명의 존엄성과 정체성은 생명 연장이나 이식에서 야기되는 가능한 위험들을 능가하며 증진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장기이식의 형태
장기이식의 형태는 일반적으로 크게 네 가지로 구분되는데, 자가이식(autograft)과 동종이식(allograft), 그리고 동인자형이식(isograft)과 이종이식(xenograft)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자가이식이란 동일한 사람에게서 장기의 적출과 이식을 하는 것으로서, 신체 조직의 전체적인 선을 위해서 일부를 희생시킬 수 있다는 전체성의 원리에 입각해서 정당화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화상을 입었을 경우 허벅지나 엉덩이의 살을 상처 입은 부위로 이식하는 경우를 말한다.
동종이식이란 수혜자와 같은 종의 사람으로부터 장기 이식이 되는 것으로서, 인간 존재를 결합시키는 연대성의 원리에 따라서, 그리고 고통 중에 있는 형제자매들에게 자신을 주는 애덕의 요구에 따라 정당화되는 것이다.
동인자형이식이란 일란성 쌍생아에서처럼 두 개체가 다르다 해도 유전인자가 동일한 경우, 동종 간의 이식 방법 중 가장 이상적인 이식 형태이다.
이종이식이란 이종 개체 사이의 장기이식으로 예를 들면 개나 원숭이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할 경우로 이때에는 반드시 이식 장기의 거부 현상이 따른다.
자가이식의 경우에는 적출할 장기가 기증자에게 심각하거나, 회복 불가능할 정도의 손상을 끼치지 않는 것일 때에는 정당하다. 그런데 동종이식의 경우에는 더 이상 살아 있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시신과 관련된 것이다. 시신은 항상 인간의 사체로서 마땅히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주체자로서의 존엄성과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의 궁극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다. “사체는 용어의 본래 의미상, 유일한 권리의 주체인 인격성이 제거된 상태이므로 더 이상 권리의 주체가 아니다. 따라서 그것을 유용한 목적으로, 도덕적으로 하자 없고, 고상하게 사용하는 것은 단죄 받을 일이 아니라, 정당화될 수 있는 일이다.”(1956년 5월14일, 교황 비오 12세가 이탈리아 각막 협회와 맹인 연합회 대표들에게 한 훈화 중에서)
그러나 장기적출이 죽음을 유발하거나, 재촉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하려면, 장기적출 대상이 시신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곧 시신으로부터 장기를 적출하는 것은 기증자의 확실한 죽음이 확인되었을 때에만 합법적이다. 따라서 장기 기증자가 시신으로 간주되려면, 그 사람이 뇌사 상태, 곧 “모든 뇌의 활동이 회복 불가능한 정지 상태인지를 충분히 확인해야 한다. 완전한 뇌사임을 충분히 확인하면, 필요한 시험을 거친 후에, 장기들을 적출하고 또한 이식을 위해서 그러한 장기들이 살아 있도록 하기 위해 인공적인 장치를 다는 것은 합법적이다.”(교황청 과학원, 인공적 생명 연장과 죽음의 정확한 순간의 결정에 관한 선언, 1985. 10. 21.)
한 생애 동안 모든 인간의 건강과 생명 자체가 이웃에 대한 봉사를 실행하면서 위험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죽은 후에라도 생명은 이식된 장기의 형태로서 타인을 위한 봉사에 계속적으로 헌신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죽은 후 자신의 장기를 제공할 수 있는 자유의 존중, 장기의 유용성, 그리고 가족들의 권리와 그와 관련된 법적인 문제들은 해결되어야 하지만, 윤리적인 견해에서 우리 지상 생활의 마지막이 올바르게 끝을 맺어야 한다면 우리의 장기가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데 사용되는 것을 막을 만한 어떠한 장애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이창영 신부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위원·본지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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