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자에게 일할 기회와 후손 위한 다양한 정책 개발해야
고령화 사회를 걱정하는 목소리를 흔히 듣습니다. 1950년 유엔은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의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7%에 달하는 국가를 고령화 사회라고 정의하고, 14%에 달하는 국가를 고령사회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2000년 7월 1일을 기준으로 65세 이상의 인구가 7%를 넘어서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고, 2020년경에는 14%를 넘어서서 고령사회가 될 거라고 통계청이 전망했습니다. 통계청의 전망은 아마도 틀림없이 적중할 것 같습니다. 아니 그보다 훨씬 빨리 고령사회가 도래할지도 모릅니다.
고령화사회 하면 일본이 떠오릅니다. 모두 다 알고 있듯이 일본은 명실 공히 세계 최장수국가입니다. 이미 1970년에 고령화사회에 진입해서 우리보다 30년이나 빨리 고령화사회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1994년에 14%를 넘어서서 고령사회에 진입했고, 지금은 거의 20%에 달합니다. 때문에 일본에서는 과거부터 이를 대비해서 다양한 정책을 세워 왔습니다. 한 예로 65세 이상의 노인이 병으로 누워있을 때 간호사 등이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노인을 돌보고 그 비용의 90%는 국가가 부담해 주는 개호보험(介護保險) 제도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가족에게만 맡기는 시대가 지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의 정책은 대단히 빈약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요즘의 흐름을 보면, 고령화 사회 문제를 인구의 증가로만 해결하려는 단순한 발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령화사회 앞에 저출산이라는 단어가 늘 붙어 다니는 것에서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출산은 분명 고령화 사회를 재촉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출산 고령화 사회라고 부르는 것은 당연한 듯이 보입니다. 하지만 이 단어를 보면 왠지 씁쓸한 생각이 듭니다. 고령화 사회 문제를 고출산으로 해결하려는 낮은 수준의 정책, 그리고 저출산의 책임을 국가가 지려하지 않고 각 가정에 전가하려는 속셈이 엿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를 많이 낳으면 고령화 사회의 걱정거리가 해소될까요? 아니 고령화 사회 문제를 고출산으로 해결하는 것이 옳은 정책일까요?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에게 행복하고 평화스러운 국가를 넘겨주지는 못할망정 고령화사회를 책임지라는 임무만 부여하는 것은 너무 심한 이기심이 아닐까요? 지금 이 시대 우리가 낳은 문제를 미래의 아이들에게 떠맡기지 맙시다. 아이들은 미래의 기둥이라는 의미가 결코 우리를 먹여 살리라는 뜻은 아닐 겁니다.
미래의 아이들에게 행복과 평화, 희망을 넘겨줄 책임이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아무 걱정 없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을 조성해야 합니다. 한 가정의 가족수가 2.9명밖에 안된다고 호들갑을 떨어본들 그 말을 듣고 아이를 낳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조건 아이를 많이 낳으라는 것은 고생이라는 함정에 빠뜨리는 속임수일 테니까요.
지금 우리는 저출산 고령화 사회를 걱정하면서도 그에 상응한 대책을 구체적으로 세우는 노력은 게을리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적게 낳는다고 걱정하면서도 많이 낳아도 키울 수 있는 환경은 안 만들고 있습니다. 고령화사회를 예측하면서도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이 모든 짐은 고스란히 아이들 몫이 됩니다.
그런데 저출산 고령화 사회를 얘기하면서 아이들과 청소년을 걱정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안을 무거운 짐을 덜기 위해 우리가 좀 더 고생해야 한다는 주장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유산은 전혀 남겨주지 않고 빚만 넘겨주는 뻔뻔스러움과 얄팍한 속셈만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고령화 사회의 짐을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내맡기는 얄팍한 속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1999년 국제노인의 해에 제정된 ‘노인을 위한 유엔 5원칙’에 “고령자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정책결정에 참가하고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젊은 세대와 나눈다”는 참여의 원칙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대우만 받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사회의 주체로 참여하고 활동하는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정부는 생산능력이 있는 노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많이 만들고, 미래 아이들의 짐을 덜어주기 위한 정책을 개발해야 합니다.
저는 저출산 사회에 희망을 갖습니다. 아이들이 적게 태어나면 요즘처럼 치열한 입시경쟁도 없을 것이고, 대학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만 마음껏 할 수 있는 행복을 만끽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입니다. 그리고 그 행복을 그들의 자식에게 전달하는, 행복의 확대재생산. 이런 나라를 상상합니다. 그런 시대는 없을 거라고요? 제가 꿈을 꿨나 봅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