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가족 위해 밥을 짓자”
해외에서 사는 사람들은 고향의 맛을 잊을 수 없다. 그래서 동포끼리 외국에서 만나게 되면 사람들은 으레 서툰 솜씨나마 고향음식을 마련하여 함께 나누면서 그들이 생명의 뿌리를 내렸던 고향에 대한 추억과 조국에 대하여 정담을 나누곤 한다. 타향살이를 하는 사람들은 특히 명절 때가 되면 고향에서 엄마나 할머니께서 정성스럽게 만든 사랑의 요리를 그리워한다. 획일적인 외식을 할 수밖에 없는 군인이나 입원환자와 옥중에 있는 사람들과 유학생, 특히 해외유학생이 귀향해서 제일 먼저 먹고 싶어 하는 것은 어려서 먹던 음식, 즉 고향의 음식이다. 설명절과 추석명절에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교통지옥을 무릅쓰고 고향을 찾는 것은 바로 고향의 맛을 찾는 것이다.
‘대장금’이라는 한 편의 드라마는 국내는 물론 동남아시아에서 엄청난 좋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한류’의 붐을 일으킬 수 있도록 좋은 평가를 받은 것은 서양의 상업주의 문화에 길들여져 살던 사람들에게 그들이 잊고 있었던 전통문화의 우수성과 중요성을 되돌아 볼 기회를 갖게 해준 것이다. 유다인과 크루드족과 화교와 월남사람들과 고려족(조선족)은 어디서 살건 그들의 풍속과 고향의 맛을 늘 당당하게 지키면서 산다. 그래서 그들은 모진 박해를 겪으면서도 꿋꿋이 살아남았다.
그러나 오히려 국내에서 살고 있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자랑스러운 고향의 맛이라든가, 우리의 얼이 깃들어 있는 풍미(風味)를 모르고 산다. ‘거리귀신’이 들린 사람들이 먹는 매식은 고사하고 이제는 가정에서도 대량생산된 가공식품(방부제, 착색제, 온갖 화공약품이 범벅이 된 것)들이 범람하고 있다. 뿌리가 없는 뜨내기 음식, 햄버거, 피자, 프라이드치킨, 감자 칩, 핫도그, 돈가스, 라면, 인조청량음료, 깡통분유와 같은 인스턴트식품이나 패스트푸드는 전통문화를 고사시킬 뿐만 아니라 겨레의 얼을 황폐화시킨다. 어떤 음식을 어디서 어떻게 누구와 먹느냐는 것은 인간의 정신과 가치판단과 성격에 영향을 끼친다.
사람만이 요리를 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손님을 위해 밥을 짓는다는 것, 즉 요리를 한다는 것은 기쁨이며 사람다운 일이다. 사람만이 요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요리를 포기하거나 기피하는 것은 스스로 사람답게 사는 것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에드몽 발보텡은 그의 <사람다움>이라는 저서에서 “먹으려는 의지는 살려는 의지”이며 식사는 가장 사람다운 것이며, 어떤 사람의 사람됨은 그가 어떤 음식을 먹느냐가 말해준다고 하였다. 프란체스카 리고티는 그의 최근작<부엌의 철학>에서 “요리를 하는 것은 철학하는 것, 즉 지혜를 사랑하는 것과 같으며”, 요리사는 마치 철학자가 논문을 구상하고 기술하는 것과 같은 사유의 과정을 밟는다고 갈파했다.
예의범절이란 식사할 때의 올바른 몸가짐과 자세를 취하는 데서부터 비롯했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식사예절은 인간의 도덕생활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다도(茶道)와 주도(酒道)를 비롯하여 식사예절은 기본적으로 남을 배려하는 것이며 인간만의 품위를 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 즈음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대중식당에서도 식사예절이 거의 무시되고 있다. 게걸스럽게 먹거나 시끄럽게 먹거나 먹으면서 큰소리로 떠들거나 하여 곁에 사람을 불쾌하게 만든다. 무릇 인간은 식사예절을 배워야하고 가르쳐야한다.
식사예절의 전범 발우공양
우리는 절에서 행하고 있는 스님들의 발우공양에서 식사예절의 전범을 볼 수 있다. 각자의 바리때(나무로 된 식기)에 알맞게 음식을 담고 식사를 같이 시작해서 같이 끝낸 후 앉은 자리에서 바리때를 물로 헹구고 그 헹군 물을 마시고 수건으로 잘 닦은 후 바리때를 보에 싸서 제자리에 갖다놓는다. 그릇을 닦는 것은 위생적인 의미 이상의 심오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국인의 식기(수저와 주발)엔 한국인의 얼이 담겨 있다. 사발에도 수저에도 조상들의 소원 즉 수(壽), 부(富), 귀(貴), 강(康)등이 새겨져 있다. 부모의 얼이 담긴 식기는 잘 보전되어 오래 오래 사용될 수 있어야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명의 문화를 이룩하는 밥과 식기를 함부로 다룰 수 없다.
진교훈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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