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와 부모, 학생간에 좋은 영향줄 수 있도록 노력을
오늘 나는 경찰서에 다녀오는 길이다. 우리 학생 중 한 명이 정말 재수없게 수배자와 함께 있다가 경찰서까지 가 있었던거다. 아이는 보호자가 필요했고 멀리 있는 부모 대신 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아이를 데리고 나오면서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왜 이 아이들까지 경찰서 조사실로 데려왔냐”고 따지려다가 빨리 그 공간을 벗어나고 싶어서 그만둔 것이 후회되었다. 하던 일이 있어서 다른 선생님 한 분께 아이 저녁과 귀가를 부탁드리고 돌아왔다.
오늘 낮에는 교복차림의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상담을 하러 왔다. 묻기도 전에 “학교부적응인데요” 한다. 어디서 대안학교인 우리학교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다. “한 학기 겨우 다니고 학교가 왜 그렇게 싫은건데?” 하고 물었더니 “꼰대한테 더 맞기는 싫어요”하고 잘라 말한다.
지난주에는 선생님과 함께 상담을 온 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이 며칠 후 혼자서 다시 왔다. “선생님은 잘 계시지? 너네 선생님 너무 좋더라” 했더니 “우웩” 토하는 시늉을 한다. 의아해하는 나에게 그 학생은 “학교에서랑 너무 달라서 깜짝 놀랐잖아요”한다. 학생이 이럴진대, 교사들은 어떨까? “할만큼 해봤는데 그 아이는 끝났다”고 잘라 말하는 교사도 있고 멀쩡한 얘를 자폐라고 우기는 교사도 있다. 물론, 아직껏 자기 학교를 떠난 아이에게 메일을 보내면서 애정을 주는 교사도 있다.
세상이 나와 타자와의 관계로 만들어지는 그물망이라고 생각한다면, 학교는 교사와 학생과의 관계로 이루어지는 그물코다. 지난 한 학기동안 내가 접한 수많은 사례는 그 사례만큼이나 다양한 유형과 이유들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관계의 어긋남’이라는 말로 일별해도 별 무리가 없겠다.
세상과 친해지지 못하고 나를 만나게 된 아이들은 제일 먼저 부모와의 관계가 어긋나 있었다. 아이가 보는 앞에서 험한 꼴을 다 보이고 이혼을 한 부모가 예사고 개중에 많은 부모들은 조부모에게 아이를 맡기고 뿔뿔이 대처로 나가고 없다.
사고로 한 부모가 일찍 죽고 한 부모가 생계를 꾸리며 힘겹게 아이를 키우는 집이 있고, 양 부모가 다 있어도 아이와의 관계를 풀지 못하고 서로 앙숙처럼 사는 집도 있다. 가정의 담을 넘어 아이들이 처음 세상과 만나는 곳이 학교다. 아이들은 이곳에서도 관계를 잘 풀지 못하고 있다. 교사에 대한 불신, 친구들 사이의 따돌림과 이어지는 패거리 문화는 관계에 서툰 아이들이 처한 현주소다. 동류에 대한 지나치리만치 견고한 의리는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관계의 그물코 중 유일하게 남은, 말하자면 마지막 보루다. 그래서 아이들은 결단코 이 마지막 보루를 지켜내고자한다.
이 ‘의리’가 아이들의 마지막 보루라면, 자기에게 잘해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교사들이 보여주는 애정과 의무감의 그 민감한 차이를 너무나 빨리 예리하게 포착해내는 능력은 아이들의 생존 방식이다. 눈물나도록 가슴이 아파오는 때, 내 시린 눈빛을 보고 당황하는 아이들의 눈빛과 마주치면 나도 적잖게 당황한다. 오늘, 경찰서 문을 나오면서도 그랬다.
그 아이는, 자신의 결백을 믿어달라는 애절한 눈빛을 하고 있었지만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고, 한 편으로는 ‘그래 니 맘대로 생각해라’는 체념의 그림자도 보여주었다.
“참 재수없다 그지?”
“예, 난 정말 아무 잘못도 없어요. 심지어 뭐가 어찌된 일인지도 모르는걸요!” 내 한마디에 아이는 반색을 하며 가슴에 눌러두었던 말을 쏟아냈다. “선생님 700원만 줘요” 아이는 사뭇 당당하게 차비를 얻어 돌아갔다.
관계성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하고 싶다. 관계(關係)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 등 둘 이상이 서로 관련을 맺거나 관련이 있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리고 한가지 더 ‘어떤 것이 다른 것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는 뜻도 있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교감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교감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 연기론적 세계관은 세상만물 모두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보며, 불가(佛家)에서는 그것을 그물망(인드라망)으로 묘사하기도 한다.
교육이라는 관계는 부모와 학생, 학생과 교사, 교사와 부모가 서로 그물코처럼 연결되어 있는 관계의 총합이다. 그 각자는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가르침과 배움, 돌봄과 성장이라는 더 큰 그물의 의미망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교육의 관계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얼마전 인터넷에 ‘모든 것이 교사의 잘못’이라는 한 여교사의 자성적인 글이 인기를 얻으며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 온 적이 있다. 이런 헌신적 고백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우리가 교육을 관계의 그물망이라고 인정한다면 하루도 자신을 성찰하지 않을 수 있는가? 교사가 학생을 포기하고 학생이 교사를 불신하고 부모가 아이와 반목할 수 있는가? 올바른 관계는 치유와 성장을 지향하는 것이어야 하겠기에, 서로에게 주어야 할 영향은 좋은 영향이어야 하겠기에, 관계의 의미를 곱씹으며 성찰 또 성찰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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