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 파문이라는 참담한 사태 막기엔 교회도 역부족
태풍처럼 한국사회를 강타한 ‘황우석 파문’이 석 달 째로 접어든 지금까지도 가라앉을 줄 모르고 있다. 거짓말이 새로운 거짓말을 낳고, 그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낳는 이 참담한 현실 앞에서 한국사회는 지금 총체적인 신뢰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솝 우화의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성장지상주의’란 화려한 옷에 가려졌던 초라한 우리의 알몸이 드러난 셈이다.
되짚어 생각하면, 이 모든 일은 이미 예정돼 있었던 게 아닌가. 불치병 환자에게 새로운 삶을 준다는 미명 아래 생명을 잉태하는 그릇인 인간 난자를 함부로 적출해 거리낌 없이 조작했던 윤리의식의 마비가 이 모든 참사의 근본 원인이 아니었던가. 생명 조작을 위대한 업적이라며 환호하고 떠받들었던 우리 자신들의 천박한 성과만능주의가 벽돌처럼 쌓이고 쌓인 끝에 거대한 위선과 독신(瀆神)의 바벨탑을 세웠던 게 아니었던가. 생각하면 소름끼치는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을 지어준다며 왕궁을 찾아온 사기꾼들이 허영에 가득 찬 임금의 옷을 벗기고 `공기로 만든 옷을 입혔을 때 임금 자신은 물론 신하 중 그 누구도 그것이 가짜임을 밝히지 못했다. 벌거벗은 임금이 위풍당당하게 거리를 행진했을 때 그 어떤 백성도 그가 벌거벗었다는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순진무구한 한 어린 소년의 입에서 “임금님은 벌거숭이야!”라는 진실의 소리가 터져 나오기 전까지는.
따지고 보면 우리 자신이 바로 어리석고 허영심 많은 임금이었으며, 거짓에 눈 감은 신하요, 백성들이었다. 은폐된 진실을 밝혀야 할 언론도, 고명함을 자랑하던 학계도, 국민의 세금을 공변되게 써야할 정부도 어리석고 위선적인 신하와 백성들이었다. 그 결과 지금 우리는 허위와 위선이 휩쓸고 지나간 폐허의 거리에 서 있다.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어째도 좋다는, 성장만 할 수 있다면 그 어떤 무리수를 범해도 괜찮다는, 껍데기만 번드르르 하면 알맹이는 비어 있어도 상관없다는 천박한 공리주의가 맹목적 애국주의와 결합했을 때의 폐해를 지금 우리는 똑똑히 목격하고 있다. 줄기세포가 개발되면 차세대 성장 동력이 될 것이며, 연간 수십조 원의 돈이 생길 것이라고 떠드는 탐욕 앞에서 삶과 생명의 윤리가 비집고 들어갈 틈은 없다. 인간의 생명가치마저 돈과 국익이란 교환가치로 환산되는 야만의 숲에서 ‘영성(靈性)’이란 이름의 새가 깃들일 가지는 없다.
‘황우석 신화’라는 바벨탑이 이 땅에 세워진 데에는 종교계의 책임도 없을 수는 없다. 황우석 성공의 가면이 벗겨질 때조차도 그를 옹호했던 어떤 종교들과는 달리 가톨릭교회는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인간의 생명 가치를 파괴하는 비윤리적인 행위라고 꾸준히 문제 제기를 해오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위안 삼을 일은 아니다. 오늘의 이 참담한 사태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이 사실 아닌가. 비록 목소리는 내었으되, 예고된 이 재앙을 온 세상에 널리 알리는 데는 소홀했는지도 모른다. 개발만능주의의 포로가 된 사람들의 둔감한 마음의 벽을 손바닥에 피멍 들도록 두드리는 일에는 소극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 당장 인터넷에 들어가 보라. 지금에 이르러서도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미몽에 빠져 있다. 황우석 신화의 파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맹목적 국익을 말하며, 애써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있지도 않은 음모론을 퍼뜨리며,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가 황우석을 구하자는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어쩌다가 우리 사회에 이토록 맹목적인 광신주의가 팽배했는가.
교회의 지체인 우리 신자들은 이 참담한 사태에서 면책됐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온 세상이 ‘줄기세포교(敎)’라는, 종교를 방불케 하는 물신주의적 광신에 휩쓸려 들어갔을 때 과연 우리는 “아니오!”라고 힘써 외쳤던가. 광야의 예언자 노릇을 제대로 했던가. 어쩌면 우리는 거짓 신화가 유포되고 세상을 지배하도록 방관자 노릇을 해왔던 지도 모른다.
이발사는 입을 열지 말라는 임금님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끝내 대숲에 가서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다. 그러자 바람에 흔들리는 대숲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온 세상에 진실을 퍼뜨렸다.
진실을 끝까지 은폐할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는 이제 가슴을 치며 “내 탓이오!”를 외쳐야 한다.
그리고 임금님의 이발사처럼 진실을 말해야 한다. 물신(物神)이 휩쓰는 이 황폐한 세상에 생명을 낳아 기르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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