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소 조항 너무 많아 경악”
2003년 1월 29일 정부 관련 부처는 물론 생명공학자들, 시민단체, 종교계 등이 오랜 진통을 겪은 끝에 ‘생명 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생명윤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이 법률은 2005년 1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정부에서는 이 법안이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여러 차례의 공청회를 비롯한 오랜 논의 끝에 나온 우리나라 최초의 생명 윤리 법안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국민들은 이러한 법률이 있는지, 언제부터 시행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심지어 이 법률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왜일까? 우리의 생명과 직접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 이러한 법률을 우리 국민들은 왜 모르고 있을까? 그것은 한마디로 정부의 주도정책 사업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생명공학 육성이라는 정부의 주요방침 때문에 이 법안은 정부주도 하에 국민들에게 자세히 알리지도 않고 국회 본회의를 날치기 통과했기 때문이다.
이 법률이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 듯하게 민주적인 절차와 다양한 의견 수렴으로 올바르게 만들어진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이 법률이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수호하는 법률인가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과정이야 어떻든 간에 올 해부터 시행되고 있는 이 법률이 과연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밑바탕으로 하는 참된 법률인가 하는 것이다. 필자가 볼 때는 많은 부분에 있어서 그렇지 않다. 참으로 경악을 금치 못할 독소 조항들이 너무나 많다. 인간 생명을 수호하기는커녕 오히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근본적으로 훼손하거나 아예 실험이나 조작의 도구로 사용될 위험성이 너무나 많다.
필자는 이러한 법률이 통과한 데 대해 경악과 허탈감을 가지면서 이 법률이 가지고 있는 지극히 잘못된 점들을 몇 가지 분명히 지적하고자 한다.
지극히 잘못된 점들
첫째, ‘생명 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제1조에서 밝히고 있는 목적이 불분명하다. 곧, 이 법률은 제1조에서 입법 목적으로 ‘국민의 건강과 삶의 질 향상’ 그리고 동시에 ‘생명 윤리 및 안전을 확보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고 너무 광범위하게 진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 법률은 무엇보다도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생명 윤리 및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 그 분명한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여러 목적을 광범위하게 표현하게 되면 본래의 목적이 모호하거나 불분명하게 되어 본질을 그르칠 수가 있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생명 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의 목적에 여러 목적을 광범위하게 표현해 놓은 모호성은 찾아 볼 수가 없다.
둘째,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제7조)의 구성이 잘못되었다. 아울러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운영 규정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제7조에 따르면 구성원 중 1/3이 정부 부처의 장관(처장)으로 위촉 또는 임명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이 위원회의 모든 운영권을 정부의 의도대로 주도하겠다는 뜻으로밖에는 달리 해석될 수 없다. 결국 국가 주도 사업으로서 정부가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겠다는 의도이다. 다른 많은 나라들에서는 정부 관료들은 물론 생명공학산업계 해당자들조차도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셋째, 인간 배아 등의 생성, 연구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제11조 이하의 내용은 당연히 삭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배아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 생명으로 존중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유수한 논문이 게재되는 저명한 자연과학 잡지인 Science지에 따르면, 2002년 7월 4일자에 논문을 기고한 헬렌 피어슨(Helen Pierson) 씨가 난자와 정자가 수정된 지 수 분만에(기존에는 24시간) 원시선이 나타나는 것을 밝혀냈다.
곧 수정된 배아의 어느 부분에서 머리와 다리가 생기며, 또한 어느 면이 등이 되고 배가 될 것인지는 정자와 난자가 결합한 지 수분 내지 수 시간 내에 결정되는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따라서 원시선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수정된 지 14일 이후에야 인간 배아가 생명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할 것이라는 종래의 주장은 비윤리적일 뿐 아니라 비과학적인 것이다.
넷째, 유전자 검사기관(제24조)과 유전자 검사기관에서 실시하는 유전자 검사에 관한 내용(제30조) 또한 우려되는 바가 크다. 왜냐하면 제24조에서는 유전자 검사기관의 설립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그저 신고하는 것으로 허용하고 있다. 이는 상업화를 비롯한 인권 침해의 위험성이 매우 높을 뿐만 아니라, 유전자 검사 또한 그 부작용(친자 확인 유전자 검사로 인한 가정불화, 가정파탄 등)이 매우 심각하다. 이렇게 되면 개인 정보 유출로 말미암아 또 다른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이러한 법률이 시행될 때 무고한 생명(수정란, 배아)의 희생이 야기될 것은 뻔한 일이다. 법률(안)이 입안될 때 공청회를 거쳐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민주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바른 절차이기는 하다. 그러나 생명의 존엄성과 같은 문제는 다수결 원칙으로 결정될 사항은 결코 아니다. 만약 이 문제가 다수결로 그리고 대중의 선호도에 따라 결정될 수 있는 것이라면,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인간복제를 선호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더 많아질 경우 인간복제를 합법적으로 허용해야 하는 불행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반생명적 법률을 보면서 개탄을 금치 못한다. 따라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양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 법률의 개정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설마 ‘생명 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을 만들 때 이런 마음으로 만들지는 않았는지 모르겠다.
“‘생명 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그까이꺼 대충 뭐…”
이창영 신부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위원·본지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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