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인권은 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기결정권 가질 때 주어져
최근 황우석 연구팀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허실이 속속 드러나는 가운데 난자 채취가 여성의 인권과 건강권의 침해라는 여성계의 지적이 주목을 끌고 있다.
지난 2월 6일 35개 여성단체들은 기자회견을 가지고 ‘난자채취 피해자 신고센터 설립 및 손해배상청구소송’ 계획을 밝혔다. 연구용 난자 채취로 인한 여성의 육체적, 정신적 피해사실이 점차 드러나고 있으나 그에 대한 적절한 조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므로 ‘난자채취 피해자 신고센터’를 개설하여 여성들의 피해사례를 모아보고 그들의 고통이 치유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그동안 황우석 연구팀이 2200개 이상의 난자를 사용할 수 있도록 국가가 조사감독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하여 손해배상을 청구하여 여성의 인권과 건강권을 침해해 온 사회적 관행에 경종을 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재현되지 않도록 법제도 개혁을 촉구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사실 황우석 신드롬이 온 나라를 들끓게 하던 무렵, 난자기증 재단이 설립되었고 난자를 기증하겠다는 여성들이 줄을 선다는 언론의 보도는 마치 여성들에게 난자 기증이 애국적인 행위라고 부추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연구 성과의 찬양과 아울러 다른 나라와의 경쟁을 들먹였고, 난치병 치료를 내세워 난자 기증을 미화했지만 정작 난자채취의 과정과 그 후유증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따라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난자 채취를 헌혈과정 정도로 여겼던 것이다. 즉 충분한 정보를 주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진실을 왜곡하게 만든 셈이다. 실제로 난자채취에 대한 사전 정보를 접하지 못한 채 난자를 기증한 후 그 후유증으로 고통당하는 여성의 사례가 있다.
이러한 난자 채취와 기증, 그리고 음성적인 난자 매매에 관한 일련의 사회 현상을 접하면서 새삼 여성으로서 ‘여성의 몸’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된다. 하나는 여성주의자들이 말하는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관한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생태적인 관점에서 본 ‘여성의 몸’에 대한 것이다.
여성들의 ‘성적 자기 결정권’은 지난 95년 북경세계여성대회에서 다루어진 주제 중 하나였고, 여성주의(Feminism)가 대두되면서 부각된 문제이다. 이는 남성중심적인 인류 역사를 돌아볼 때 여성들은 자신의 몸에 대해서 스스로 결정하는 권리를 가지지 못했다는 통찰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자연적인 현상 즉, 생리와 출산은 종교 안에서나 사회 안에서 금기시되거나 열등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여성의 몸에 관한 사회적 통제가 여성들의 자기 결정권을 침해해왔다. 예컨대 순결 이데올로기가 문화적으로 그러했고, 낙태에 관한 법률이 사회적 통제의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자기 결정권’이란 단순하게 스스로 결정한다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난자채취와 관련하여 여성계는 충분한 정보를 주지 않고 이루어진 것 자체가 인권침해라고 지적했다. 사전에 충분한 정보가 주어진 후 심사숙고하여 결정을 내릴 때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기결정권이기 때문이다. 고의로 정보를 주지 않을 때 또는 스스로 정보를 참고하지 않고 내리는 결정은 잘못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 스스로에게 그리고 여성들에게 묻고 싶다. 과연 자신의 몸에 대하여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우리는 자신의 몸에 대하여 깊이 이해하고 숙고한 후에 결정을 내리고 있는가?
지난 한 세기 동안 고안된 많은 피임도구와 피임약은 어느 것 하나 부작용 없는 것이 없고, 낙태는 여성의 건강에 치명적이며, 갱년기 장애를 치료하는 호르몬 제제는 호르몬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여성들은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언제나 후유증이 드러나서야 조금 경각심을 가지기는 하나 여전히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기는 매한가지이다. 이미 그것에 길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제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하여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생태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인류 역사상 ‘여성의 몸’은 있는 그대로 존중받아본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의 몸은 아이를 낳아주는 도구로, 성적 욕구의 대상으로, 현대에 와서는 생명공학의 도구로까지 대상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여성의 몸이 존중받기 위해서는 우선 여성들이 스스로 자신의 몸에 대하여 깊이 이해해야 한다. 인위적인 수단들이 여성의 건강을 어떻게 해치는지 면밀히 살펴보아야 하며, 과학적 지식을 통해 여성의 몸을 제대로 파악하는 작업을 해야 하고, 있는 그대로의 여성의 몸에 대해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하여 여성의 몸이 산업화와 과학의 도구가 되지 않도록 깨어있어야 한다. 여성이 몸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자기 결정권을 가질 때 여성의 인권이 보장될 수 있다고 본다. 여성들의 진정한 자기결정권에 대한 자각과 생태적인 관점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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