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성 거스르면 거부해야”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의 선물이며, 그분의 모상이고, 각인이며, 그분 생명의 숨결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이 생명의 유일한 주인이시며, 따라서 인간은 이 생명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다.”(‘생명의 복음’, 39항)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
가톨릭 교회는 언제나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으며, 하느님과의 직접적인 관계, 즉 오로지 하느님의 협조자로서의 관계에 있다고 가르친다. 무엇보다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었고,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어 가진 존재이기에 다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존엄성과 고유성’을 가진다. 이러한 인간의 하느님과의 연관성과 인간의 초월적 개방성은 그리스도교적 인간관의 내적인 바탕이 된다. 그러므로 인간 생명의 기원과 목적 그리고 그 생명의 주도권(initiative)은 인간 스스로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이신 하느님에게 있는 것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육신 생명은 인간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바로 창조주이신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고귀한 ‘선물’이다. 동양 사상에서도 인간이 가진 ‘생명’ 혹은 ‘목숨’은 단순히 목숨만을 뜻하지 않고 바로 하늘로부터 ‘주어진’ 것으로 가르친다. 이런 의미에서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인간의 생명을 ‘천명(天命)’이라 했으며, 이는 곧 인간 생명이 ‘절대적’인 것임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생명은 물론 다른 사람의 생명을 어떤 이유에서든 해쳐서는 안 되며, 끊임없이 선물로 주어진 생명을 보호하고 가꾸어나가야 할 의무가 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지상생활 동안 천상생활을 그리워하면서 자신의 생명과 타인의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보호하고, 수호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특히 회칙 ‘생명의 복음’은 인간 생명의 선성(善性)에 대한 근거로서 인간은 “이 세상에 하느님을 증거하는 존재이고, 그분께서 존재하신다는 표징이며, 그분 영광의 흔적”(창세 1, 26~27; 시편 8, 6 참조)이기 때문에 다른 피조물들의 생명과는 전혀 다른, 하느님의 영광 그 자체라는 점을 강조한다.(34항 참조) 이렇게 인간은 현세적인 존재의 차원을 훨씬 넘어서는 충만한 생명으로 부르심을 받은 존재이며, 따라서 위대함과 측량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존재이다.
인간 생명에 대한 이러한 기초에서 인간 생명의 특성으로서의 신성함과 불가침성이 드러나게 된다. 인간 생명의 신성함, 선함 그리고 불가침성이라는 특성은 결국 인간은 그 자체로 목적이지 수단으로 전락되어서는 안 된다는 또 하나의 중요한 원리를 제공하게 된다.
한편, 인간 생명의 시작에 관한 문제는 가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생명 윤리의 중심에 서 있다. 가톨릭 교회는 인간 생명이 탄생하는 최초의 결정적인 순간은 수정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라고 가르친다. 이 순간에 유일하고도 반복되어질 수 없는 유전 인자로서 아버지의 생명, 어머니의 생명과 구별되는 새 생명이 시작되는 것이며, 따라서 수정이 이루어지는 수정란의 시기를 이미 인간 생명이 시작된 시기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신앙교리성, ‘인공 유산 반대 선언문’ 참조)
이렇게 수정란에서부터 이미 인간 생명은 시작되기 때문에 인간은 그 존재의 첫 순간에서부터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수정란이나 복제된 배아 모두 하나의 인격적 개체로서 보호받고 존중되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만일 인간 배아에 관한 연구나 실험, 배아에게 가해지는 다양한 의료 조작이 배아가 가지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온전성을 거스르게 된다면 이는 당연히 거부되어야 하는 것이다.
과학 기술의 눈부신 발전
오늘날의 과학 기술의 발전은 참으로 눈부시고 놀랍다. 이로써 인류의 질적인 삶은 매우 크게 향상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생명 과학 분야에서의 눈부신 발전은 인류의 미래에 큰 희망을 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이처럼 인류의 삶과 직결되어 있으며, 더 직접적으로는 인류의 행복에 기여하는 목표로 발전되어 왔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과 기술은 그것이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며 나아가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발전을 도모할 때 참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는 그들의 존재 의미나 인간 발전의 의미를 나타내지 못하게 된다.”(‘생명의 선물’, 121쪽)
곧 과학 기술의 발전이 참된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발전이 그 기준이 되는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과학 기술은 올바른 목적을 추구하기 위한 한계가 분명히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인간의 재능과 창의력이 이룩해 놓은 업적이 때로는 인간 스스로를 지배하고 위협할 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 전체를 회복 불가능한 파멸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인간의 구원자’, 19항 참조)
인간의 교만과 통제되지 않는 욕구로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갖가지 과학 기술의 발달이 오히려 인류를 파멸의 위기로 몰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보호돼야
따라서 인간 생명은 그 무엇보다도 고귀한 것이기에 어떠한 경우라도 철저히 보호되어야 하며, 인간 존엄성을 침해하는 어떠한 연구나 실험도 마땅히 거부되어야 한다. 나아가 생명 과학의 모든 기술은 본래의 목적인 ‘인간’을 벗어나지 않도록 하여야 하며, 결코 인간을 위협하는 수단이나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과학적 연구나 그 응용이 그 자체 도덕적으로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아니라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그렇다고 또 이들 과학적 연구나 응용의 도덕적 기준은 그 과학 기술의 효용성이라든지 당대의 사회 관념에 따라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과학 기술은 본질적으로 도덕률의 근본 기준을 무조건 준수하도록 되어있다. 곧 그들은 무엇보다 인간에게 봉사해야 하며, 또한 하느님의 의지와 계획에 의한 인간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와 참되고 온전한 선에 봉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생명의 선물’, 121쪽; 사목 헌장, 35항 참조)
이창영 신부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위원·본지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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