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식견을 갖자
며칠 전에는 한 60대 여인이 개 900여 마리와 고양이 100여 마리를 키우는 장면이 모 TV에 방영되었다. 거실과 부엌은 물론 안방과 침대까지 개들이 차지했다. 사료 값이 한 달에 약 500여 만 원이 들어가는데 후원자들의 후원금이 부족하단다.
올해가 개의 해라고는 한다. 개는 어떤 존재인지 알아보았다. 개는 흔히 부정적인 뜻으로 쓰인다. 개에 관한 속담에 “개 눈에는 똥만 보인다” ”개 따라가면 측간 간다” “개 꼬리 삼년 두어도 황모 안된다” “죽 쒀서 개 준다” 등이 있다. 또한 본래의 것보다 못할 때 쓰는 접두사로는 개살구, 개참외, 개망나니, 개백정, 개판, 등이 있고, 욕을 하거나 멸시할 때도 ‘개’자(字)를 넣어 “개xx, 개 같은 놈”이라고 말한다.
개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경전이나 선전(禪典)에도 자주 눈에 띈다. <대방편불보은경>은 늙은 비구 마하라를 헐뜯은 죄로 개로 태어났던 균제 사미의 이야기에서 ‘개’를 악업의 결과로 묘사하고 있고, <전등록>은 사자교인(獅子咬人) 이야기에서 개를 현상에 집착하는 어리석은 존재로 상징하였다. <잡아함경>도 애욕의 결박을 끊지 못하는 중생의 모습을 ‘기둥에 묶인 개’로 비유하고 있다.
성서도 개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주지 말고… 그것들이 발로 그것을 짓밟고 돌아서서 너희를 물어뜯을지도 모른다.”(마태7, 6) “자기가 게운 데로 되돌아가는 개처럼 우둔한 자는 제 어리석음을 되풀이한다.”(잠언26, 11)
위생적으로 보아도 개와 개의 배설물은 65가지가 넘는 질병을 사람에게 옮긴다고 한다. 이처럼 개는 아주 오래 전부터 어느 문화권에서든 경멸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가 충성스럽고 헌신적이고 사랑이 넘치며 또한 우아하고 순종적인 동물로 간주되어 인간의 생활 안에 깊숙이 들어와 과분한 대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네이처>지의 전 편집자이며 과학 저술가인 스티븐 부디안스키(Stephen Budiansky)는 개의 미트콘드리아 DNA 분석부터 동물행동학, 신경생리학, 유전공학 등 가능한 학문을 총 동원해 과학적으로 탐구해서 그의 저서 <개에 대하여>에 수록했다. 저자는 개를 “인간의 본성을 이용하는” 약은 존재로 묘사한다. 저자에 의하면 개가 사람을 잘 따르는 것은 본능에서 온 것이지 사람에 대한 충직함과는 거리가 멀다. 개들이 주인을 핥거나 주인 옆에서 눕는 것은 늑대들이 우두머리에게 보이는 행동과 같은 것이지 충성이 아니다. 인간이 늑대를 길들인 것이 개가 아니라 개가 멸종을 피해 인간과 공존하기 위해 스스로 늑대에서 진화한 동물이다. 그래서 개는 사람을 자신의 우두머리로 생각하고 행동한다고 볼 수 있다. 심하게 말하면 사람을 특별한 개쯤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사람이 애완동물로 개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개가 생존의 수단으로 인간을 선택한 것이다. 개들은 인간의 감수성을 자극하여 먹이와 쉴 곳, 그리고 쾌락을 획득한다. 즉 인간의 보호본능을 십분 이용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충성심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개의 행동들, 즉 주인과 함께 길을 갈 때 낯선 사람을 보고 으르렁거리는 것이라든지, 눈밭에서 부상자 곁을 지키며 ‘부상자의 체온을 유지하려는’것처럼 보이는 행동들이 모두 조상 늑대로부터 물려받은 사회적 행동이라는 것이다. 즉 우두머리 개(인간)를 믿고 부리는 행패나 그저 부상자가 어떻게 움직일지 관찰하는 본능적인 행동이지 인간에 대한 충성도 보호도 아니라는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개는 사회적 기생동물(寄生動物)이다. 1만 년이 넘도록 아주 솜씨 좋게 인간에게 빌붙어 왔다. 라틴어로 개(canis)는 ‘기생충, 식객’을 의미한다. 개는 아름답고 매력적이다. 그러나 개는 개일 뿐이다. 개를 의인화시키거나 과대평가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개다운 본성을 가진 존재로 바라보자.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덕목 중 하나는, 있는 그대로를 보는 눈이 아닐까. 세상에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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