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사목활동과 사회사업도 국민들의 지지 이끌어내자
어쩌다 교회 기관에서 삼십년째 일하고 있다. 교회 기관도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곳이라 인생에서 누구나 겪고 사는 희로애락들을 그대로 겪어 왔다. 그 기복이야 다른 어느 일터보다 잔잔하고 또 안온한 것이었지만….
하느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런데 인간에 대한, 신앙인에 대한 환멸이, 그저 환멸이라기보다는 조그만 슬픔과 연민이 어우러지는 그런 감정에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있다. 이곳 주교회의 사무처가 아니면 결코 보기 어려운 문서들을 다루어야 할 때다. 가끔 독일 교회에서 보내오는 이른바 ‘배교’(背敎) 통지서를 보면, 곧바로 튀어나오는 욕설을 참아가며 그런 복잡한 감정을 삭여야 하는 것이다. 왜 성당엘 다니는가? 이 대명천지에 무슨 박해를 받아 ‘배교’를 한단 말인가?
나는 가톨릭 교회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권리를 포기한다는 독일어 각서에 당당히 한글로 서명을 해 놓은 문서다. 독일 교회는 이 사람이 교회를 떠났으니, 이 배교 사실(Defectio ab Ecclesia)을 세례대장에 기록해 두라고 우리 주교회의에 보내는 것이다. 우리는 두말없이 이를 해당 교구 사무처로 보내 드릴 뿐이다. 몹시 간단한 일이지만, 가슴 속에서는 매우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다. 외국 생활에서 돈에 쪼들리는 그 형편을 헤아려 보며 이해를 해보려고 하지만, 비록 형식일망정 아무렇지도 않게 신앙과 교회를 버리는 그러한 작태에, 아무래도 괘씸하다는 생각과 인간성에 대한 어떤 서글픈 마음이 가시지를 않는다. 신앙의 자유가 없던 박해 시대의 신앙인들은 정말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고 그리스도 신앙을 고백하였다. 당시의 정치 논리로 일부 순교자들의 신앙 내용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우리 순교자들의 신앙이 온 삶 그 자체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Ohne Moos nix los). 독일 어느 교구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교회세’를 설명하는 글의 제목이다. 독일이나 덴마크, 스웨덴, 스위스에서는 교회가 국가에서 독립하도록 신자들이 교회세를 낸다. 교회는 국가가 맡아서 해야 할 사회사업 등을 하고 유치원, 학교, 병원, 양로원 등을 운영하는 재원을 교회세로 충당한다. 물론 성직자들의 생활비도 준다. 쾰른대교구 2003년 예산의 70%가 교회세였다고 한다. 이 재원으로 독일 교회는 교육, 학문, 예술, 사회 봉사에 기여하고 있다. 교회세는 교구마다 민주적으로 정한다지만, 대개 소득(한해 2만4000유로일 때)의 18%에 가까운 소득세의 9%이고, 다시 공제하여 실제로는 전체 소득의 1%쯤 내는 것으로 보인다. 십일조를 외치는 목사님들의 헌금 설교에 견주어, 적당히 체면치레로 교무금을 내고 마는 우리 가톨릭 신자들의 생각으로는 조금은 치사한 계산이지만, 교회세의 도입도 합리적이고 투명한 교회 운영의 한 방안으로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뒤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재원 조달 방법으로 지난달에 정부의 중장기 조세 개혁 방안이 알려지고 “월급쟁이 유리 지갑만 뒤지지 마라”는 거센 항의와 더불어 종교인들에 대한 소득세 부과 논란이 일었다. 종교비판자유실현시민연대를 비롯한 일부 누리꾼들은 봉급 생활자들만이 아니라 종교인들부터 챙기라는 주장을 하며, 종교인 탈세 방지 범국민 서명운동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국민이면 누구나 세금을 내야 하고,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주장은 마땅하지만, 여기에서는 사제들이 받는 생활비나 성무 활동비가 근로 소득이냐, 더 나아가서 사제직이 직업이냐 하는, 논리는 단순하지만 그 절차는 복잡한 논의가 있어야 하고, 또 국민의 공감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어떻든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성직자 소득세 납부’에 관하여 진즉 이렇게 결정하였다. “사안의 본질상 성직자의 신분과 어울리지 않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성직자가 면세점 이하의 청빈한 삶을 살도록 하자는 방안과 미사 예물을 포함한 모든 소득을 납세하자는 방안 등 여러 안을 놓고 장시간에 걸쳐 신중히 논의한 끝에, 각 교구별로 준비가 되는 대로, 사제 생활비, 성무 활동비, 수당과 휴가비에 대하여 소득세를 납부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다.”(주교회의 1994년 춘계 정기총회 결정 요지) 이는 1983년부터 10년이 넘는 논의 끝에 이루어진 결정이었다. 교구별로 자진 납부하는 성직자 소득세가 실제로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결정을 알고 있는 국민들은 거의 없는 것 같아 아쉽다.
누리꾼들의 성직자 납세 요구를 보며, 성직자들의 소득세 문제만이 아니라 이제 우리 교회에서 운영하는 모든 사업들도 더욱 합리적이고 투명한 회계를 하여야 할 때가 왔다고 느낀다. 이제는 교회의 사목 활동과 사회 사업들도 신자가 아닌 일반 국민들의 지지와 인정을 받아야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자들도 나라와 교회에 어떻게 하면 한 푼이라도 덜 낼까 하여 ‘배교’까지 궁리하지 말고, 합리적으로 낼 만큼 내고 당당하게 주장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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