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폭력 예방·근절 위해선 남성의식 변화 필요
최근 우리 사회의 언론은 국회의원의 성추행, 상습적인 성폭행 범죄, 여아에 대한 성폭력, 교도 공무원의 성폭력 등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삼아 행해지는 각종 폭력을 보도하고 있다. 아울러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신상 공개나 전자 추적장치 착용과 같은 묘책을 내놓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런 대책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식의 발상일 뿐 정작 피해 여성들이 평생 겪어야 할 고통을 고려한다면 진정 중요한 것은 예방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그 근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적인 폭력은 음담패설을 비롯하여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에 이르기까지 외양상으로 다양해 보이지만 그 뿌리는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곧 남성이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느냐 하는 ‘여성관’의 문제이다. 그리고 여성관은 바로 우리 사회의 성문화(性文化)로부터 형성되는 것이기도 하다. 요즘의 현실은 바로 그런 성문화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으로서, 한국 남성들의 성의식(性意識)이 여전히 지난 세기의 구태의연함을 벗어나지 못했음을 나타내주는 지표라고 생각한다. 사실 지난 20여 년 동안 여성의 지위와 권익이 향상되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법률과 제도라는 형식의 변화일 뿐 실제 의식은 여전히 그대로인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우리 사회의 성문화는 어떠한가? 기업이나 기관들의 접대문화가 버젓하게 인정되고 있는 실정인데, 바로 접대문화의 꽃은 여성이다. 각종 광고에서 볼 수 있는 성의 상품화의 대상 역시 여성이고, 성매매가 법으로는 금지되어 있지만 음성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각종 인터넷의 포르노 사이트도 왜곡되게 성을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시키거나 도구화시키는 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그럼, 남성은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하기에 폭력을 행사하는가? 무엇보다도 먼저 여성의 존엄성을 온전히 인정하지 않는데서 기인한다고 본다. 물리적인 힘으로 여성을 제압하고 일시적인 쾌락의 도구로 삼는다거나, 여성을 상품처럼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다는 생각은 여성을 인격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 것이다. 이는 오랜 세월 지속되어 온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문화와 유교 전통의 영향이 여전히 남성들의 의식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리스도교 전통 속에 깃들어 있는 이원론으로 인하여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보는 영향도 있으리라.
다음으로 남성들의 이중성을 지적하고 싶다. 모 국회의원이 여기자를 성추행한 후 항의를 받자, 식당 여주인으로 착각했다고 둘러댔다가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여기자는 성추행의 대상이 아니고 식당 여주인은 성추행의 대상이라는 말이다. 남성들은 여성들을 곧잘 두 부류로 분리하고 싶어 하는 심리를 가졌다. 한 부류는 어머니, 아내, 누이, 딸로서 자신과 깊은 관계에 있으며, 자신이 보호하거나 지켜야 하는 대상이다(소수의 인격적 대상). 또 한 부류는 남성들의 쾌락이나 성적 대상물로서 함부로 대해도 괜찮은 대상이다(대다수의 비인격적 대상). 그러나 자신이 지켜야 하는 아내나 딸이 다른 남성의 성폭력의 대상이 되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사실 남성의 이중적인 잣대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만큼이나 어리석다. 모든 남성이 모든 여성을 자신의 어머니나 누이처럼, 아내나 딸처럼 여긴다면 여성에 대한 폭력은 사라질 터인데….
여성에 대한 폭력을 예방하고 근절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남성들의 의식이 변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의식향상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지속적인 교육이 필요하다. 의식 교육에 있어서 성인지 교육(Gender Training)과 성(性)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한 실질적인 성교육이 필요하며, 교회 가르침에 기반을 둔 인간관, 즉 남성과 여성에 대한 참된 이해가 절실히 요청된다. 특히 여성의 존엄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 사회의 퇴폐적인 성문화를 구조적으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 성을 상품화시키는 접대문화와 향락문화를 없애야 한다.
1988년 발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사도적 서한인 ‘여성의 존엄’ 제13항은 “하느님께서는 그 여인들 하나하나를 창조하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시고 사랑하신다. 따라서 여성 개개인은 ‘지상에서 하느님께서 그 자체를 위해 원하신 유일한 피조물’이다. 그네들 각자가 ‘처음’부터 한 여성으로서 인격의 존엄성을 상속한다. 나자렛 예수께서는 이 존엄성을 확인하시고, 상기시키시고, 자신의 지상 사명인 복음 선포와 구원사업의 일부로 삼으신다”고 밝히고 있다. 즉 여성의 존엄은 하느님의 창조에서 비롯됐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와 구원사업을 통해 확인됐다고 천명한다. 이제 하느님이 주신 여성의 존엄성이 모든 이의 인식에 깊이 각인되도록 선포하는 신앙인의 자세가 무릇 필요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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