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은 형벌이 아닌 또 하나의 살인이다(2)
“절대적 종신형제를 도입하자”
첫째, 사형제도 폐지에 대한 올바른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사형제도 존치론자들이 말하는 ‘범죄예방과 억제’의 효과라는 측면에 있어서, 그렇다면 과연 사형제도를 폐지할 경우 또 다른 방법으로는 ‘범죄의 예방과 억제’는 불가능한 것인가? 만약 있다면 그 방법은 과연 적합한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가?
일반적으로 사형제도 존치론자들은 폐지론자들의 주장이 그저 흉악범들이나 범법자들을 적당한 기간 동안 교도소에 수감시킨 후 감형시켜서 그들을 또다시 사회에로 복귀시켜 주자는 의견정도로 생각한다. 그러나 폐지론자들의 본질적인 입장은 일차적으로 비록 한 순간의 잘못으로 죄를 지었지만 그들 또한 고귀한 인간 생명이기에 인간이 다른 한 인간을 죽일 권리는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종신형을 통해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새로운 인간으로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자는 것이다.
‘감옥’ 혹은 ‘교도소’(prison)라는 말마디 자체가 ‘개선과 교정’의 의미를 담고 있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교도소는 개선과 교정의 교육이 그 근본적인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범자들이 더욱 늘어가는 데에는 일차적으로 그 개인의 잘못이 우선시 되지만, 교도소에서의 ‘개선과 교정’의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다. 즉, 교도소는 단순히 죄를 저지른 사람이 그 대가로 형량을 채우고 나오는 곳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알고, 깊이 뉘우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굳은 각오와 결심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기에 그 교육 과정과 방법에 있어서 끊임없는 연구와 개선이 필요하다.
이렇게 볼 때 ‘흉악범들이기 때문에 교정되지 않는다’는 말은 억측이다. 이 말은 단순히 흉악범들에게만 적용될 수는 없다. 따라서 흉악범들뿐만 아니라 모든 범죄인들이 교정되지 않는다고 본다면, 단 한번 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단기수나 무기수들도 무조건 사형시키거나 교도소 밖으로 내 보내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피의자를 사형시킨다고 해서 억울한 피해자들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피의자를 사형시켜도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상처와 고통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사형집행이 결코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 내지는 문제의 종결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흔히 피의자를 죽이는 것으로, 사형시킴으로써 문제의 끝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대부분 많은 사람들이 그 ‘일’을 쉽게, 빨리 머릿속에서 부터 잊어버린다.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피해자 권리회복의 수위가 고작 이 정도인지 고민될 때가 많다. 우리가 더욱 고민해야 할 것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일 것이다. 곧 범죄 피해의 외상과 내상을 치유해 줄 적절한 대안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하겠다.
둘째, 사형제도 폐지의 단계적, 현실적 방법으로서 ‘절대적 종신형’ 도입입이 필요하다.
어떤 이유든 간에 우선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그러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즉, 공동선을 지향하는 법을 어기고 죄를 지은 사람은 당연히 그 죄 값을 치르야 마땅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죄 값을 치르게 하는데 있어서 ‘반드시 그 사람의 생명까지 박탈해야만 하는 것인가?’ 이다.
우리나라는 사형제도 도입 후 단 한번도(조건부나 일시적으로라도) 폐지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경우는 사형제도를 도입했다가 폐지한 나라들도 많고, 사형제도가 존재 하기는 하지만 몇 십 년 동안 전혀 집행하고 있지 않은 나라들도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단 한 번도 폐지해 본적이 없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범죄를 예방하고 억제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렇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사형제도 자체가 범죄를 예방하고 억제시키는 효과를 가져 온다는 증거는 아무데도 없다. 따라서 오판으로 인해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킬 수 있는 사형제도 없이도 얼마든지 범죄를 예방하고 억제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을, 다른 방법을 도입해야만 할 것이다.
오늘날 사형제도 폐지론자들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윤리학자들과 종교인들은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하면서 그 대안으로서 감형을 전제로 하지 않는 ‘절대적 종신형’을 주장하고 있다. 곧 피해자들과 국민들의 법 감정을 고려하여 감형을 전제로 하는 ‘상대적 종신형’보다는 감형을 전제로 하지 않는 ‘절대적 종신형’을 주장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반인륜적 범죄자들에 대한 피해자들이나 그 가족들의 감정이나 온갖 피해를 고려하고 인간 생명의 박탈의 필요 없이 수형자의 재사회화가 불가능할 정도의 악질적인 범인을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하면서도 오판의 경우에 그 시정을 할 수 있는 형벌로서 사형보다는 더욱 인도적인 것으로 자연사할 때까지 교도소에서 일생을 보내도록 하는 ‘절대적 무기형’ 내지는 ‘절대적 종신형’을 제안하고 있다.
이것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흉악 범죄자들에게 어쩌면 더 가혹한 형벌일 수 있다. 그렇지만 제약된 공간에서, 죽을 때까지 감옥에서 평생 회개와 보속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면 이것이 오히려 더 확실한 형벌이론에 부합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창영 신부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위원·본지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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