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자부심과 긍지
새 추기경의 탄생으로 한국교회는 연일 경축의 분위기이다. 오래 고대했던 만큼 서울대교구는 물론 전국의 신자들은 새 추기경의 탄생을 함께 기뻐하며, 커다란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고 있다.
추기경 임명이 반드시 교세를 기준으로 이뤄지지는 않는다. 이번에만 해도 전통적으로 추기경이 교구장직을 맡아오던 파리나 바르셀로나, 더블린 대신에 아시아, 특히 홍콩, 마닐라와 함께 서울이 선택됐다.
파리대교구는 2004년말 현재 전체 인구의 70%에 달하는 154만 9천여명이 신자이다. 바르셀로나는 92%인 395만7천여명, 더블린도 84%인 108만 7천여명이다. 서울대교구는 신자수 127만 6634명으로 파리나 더블린 대교구에 못지 않지만, 복음화율(12.4%)은 턱없이 뒤지며, 바르셀로나에 비하면 신자수가 3분의 1이다.
그렇다면, 한국교회에서 새 추기경이 배출된 이유는 분명히 교세나 국력, 혹은 자발적 신앙 수용과 순교의 역사에서만 찾을 일은 아니다. 이미 정진석 추기경이 여러 차례 기자회견 등을 통해 확인해준 바와 같이 제삼천년기 아시아 복음화의 책무이다. 이는 한국 교회와 사회에 영광이며, 보편교회 안에서 한국 가톨릭이 맘껏 누려도 좋은 자부심이지만, 나아가서 보편교회의 일원으로서 그 역할과 소임이 막중함을 드러내는 무거운 십자가이기도 하다. 세계교회는 이제 과연 이러한 시대적 요청을 한국교회가 원활하게 수행할 것인지를 지켜볼 것이다.
아시아 복음화의 소명
우리가 스스로를 성찰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서 발견된다.
아시아 복음화의 소명은 자명하다. 자발적으로 신앙을 수용, 순교의 피어린 역사를 견뎌내 오늘의 영광을 얻은 한국교회는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은총을 아시아 복음화에 기여함으로써 보답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이 중대한 소명을 보편교회로부터 부여받았을 뿐만 아니라, 우리 신앙의 역사로부터 이미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과연 한국교회가 보편교회와 신앙의 기대와 요구에 부응할 만한 역량과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냉정하게 성찰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그침 없는 자기 쇄신으로 하느님께 다가가기 위해서 노력해왔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그러한 교회의 쇄신 노력을 웅장하게 드러낸 자리였고 그 쇄신 요청은 오늘날 한국교회에 더 없이 절실하다. 보편교회로부터의 강력한 기대와 요청을 받고 있는 한국교회는 이제 안으로 스스로를 쇄신함으로써 밖으로 자기의 시대적 소명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금의 한국교회에서 쇄신의 큰 줄기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강조했던 친교의 교회론의 실현과 토착화의 노력이 아닐 수 없다.
공의회가 그렇게도 중시했던 친교의 교회론은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남아있다. 성직자 중심의 권위주의와, 거기에 화답하는 평신도들의 지극히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신앙과 교회생활은 200주년 사목회의, 여러 교구의 시노드들, 사목 현장과 일상의 수다한 시도들 가운데에서도 여전히 극복되지 못하고 있다.
요청에 대한 결단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아시아 특별총회의 후속 문헌인 ‘아시아 교회’는 토착화의 긴급성을 요청한다. ‘아시아 교회’는 ‘문화들과 이루는 유대’로서의 토착화가 “그리스도교가 여전히 너무 빈번하게 외래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아시아의 다원 윤리적, 다원 종교적, 다원 문화적 상황에서 오늘날 특별한 긴급성을 띠고 있다”고 지적한다.(21항)
3월 24일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의 직무를 시작한 후 처음으로 소집한 추기경회의에서 정진석 추기경을 포함한 15명의 새 추기경을 공식 서임했다. 이제 우리는 ‘경축’과 ‘잔치’를 너머, 우리에게 다가오는 십자가를 주목해야 한다. 그 십자가는 새로 서임된 정추기경만의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의 모든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들이 예외 없이 함께 짊어질 일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첫걸음은 쇄신이다. 보편교회 안에서 한몫 하게 됐다고 자족할 일이 아니다. 이제 축제는 겸허한 감사의 기도로 마무리하고 우리에게 발해진 요청에 대해 결단으로 응답할 때이다.
한국교회에 여전히 쇄신은 필요하다.
박영호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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